지난 대선 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계파와 모임으로 구성된 시끌시끌한 당이었다. 청와대 출신 친문재인 그룹(고민정 김영배 윤건영 윤영찬 한병도 등)을 주축으로 노무현 정부 출신 친노 그룹(김한정 이광재 전재수 등)이 있었고, 친이해찬계(김성환 윤호중 조정식 등), 친정세균계(김교흥 김영주 안규백 이원욱 등), 친이낙연계(설훈 이개호 등)에 더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이 주축이 된 당내 최대 의원모임 더좋은미래(강훈식 기동민 우상호 등)와 김근태 의원계 모임인 민평련(우원식 이인영 홍익표 등)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친이재명(친명)계는 존재감 없는 비주류 중 비주류였다.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던 이 대표는 개인기로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계속 당선됐지만 당내에선 여전히 “행정가일 뿐, 중앙정치 경험이 없어서 안 된다”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대선 경선 때 ‘비문’으로 찍힌 뒤론 완전히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원내 측근도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함께 한 정성호 의원 등 극히 소수였다.
그렇게 음지에서 버티던 이 대표는 2021년 20대 대선 경선 때 이낙연 당시 대표가 삐끗하면서 자신에게 넘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 대선 후보가 된 그는 다시는 ‘주류’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하다. 이듬해 대선에서 지고도 보궐선거에 나가 기어이 의원 배지를 달았고, 8월 전당대회까지 직행했다.
그러고는 민주당의 오랜 체계에 야금야금 손을 댔다. ‘이재명 방탄용’이란 비판을 샀던 당헌 80조 개정이 대표적이다. ‘부정부패로 기소 시 즉시 당직을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에는 ‘정치 탄압 등으로 인정되면 예외로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 대표는 실제 지난해 3월 기소 당일 이 예외조항을 이용한 ‘셀프 구제’를 통해 당 대표직을 유지했다.
지난해 12월에도 당헌을 개정해 전당대회 때 대의원 투표 비중을 줄이고, 대신 권리당원 비중을 대폭 키웠다. 자신에게 배타적이던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등 직업 정치인의 권한을 줄이고 강성 지지층에 힘을 실어준 거다. ‘개딸’들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자연스레 원내에서도 ‘친명 호위무사’ ‘친명 호소인’을 자청하는 ‘신(新)친명’계가 주류가 됐다. 요즘 그의 엄청난 총선 공천을 보면 이것도 차기 전당대회까지 내다본 사전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다른 계파들은 와해됐다. 2022년 6월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참패하자 이낙연계와 정세균계는 ‘모임 해체’를 선언했다. ‘우리도 자진 해산할테니, 이재명계도 작작 하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2년가량 지난 지금, 당시 친이낙연계 대표로 모임 해체 기자회견을 했던 이병훈 의원은 경선 탈락 후 불공정 문제를 제기하며 재심을 요구 중이고, 정세균계 김영주 이원욱 의원은 탈당했다.
당에 남은 친문, 운동권도 지리멸렬하긴 마찬가지다. 친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홍영표 의원, 더미래 소속 기동민 의원은 경선도 하기 전에 컷오프됐지만 이재명 지도부의 ‘갈라치기’ 앞에 더 이상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주는 ‘계파’는 없다. 이미 ‘비주류’ 이재명이 완전히 당을 점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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