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州) 대법원의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논리는 간단하다. 주는 연방대통령의 출마 자격을 박탈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미 수정헌법 제14조 3항은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한 자는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함의는 트럼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해도 연방 공직 후보자인 트럼프의 출마 자격을 박탈할 권리는 연방의회에만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와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절차를 구별해 사법적 책임은 법원에서 다루지만 정치적 책임은 의회에서 다룬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절차의 대표적인 것이 탄핵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탄핵 소추는 국회,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하지만 미국은 탄핵 소추는 하원, 탄핵 심판은 상원이 한다. 연방 공직 후보자의 출마 자격 박탈도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연방의회에 권한이 있다고 본 것이다. 현재 연방의회에서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이지만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다.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트럼프의 출마 자격 박탈이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가 출마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반란 가담 혐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탄핵이 돼도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한 재판은 별도로 이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미국 법무부 특별검사는 그를 반란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트럼프는 대통령 재직 시 공무 중 행위는 퇴임 후에도 처벌할 수 없다며 법원에 면책을 요구했다. 연방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은 기각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연방대법원은 말도 안 되는 면책 요구에 대해 구두변론까지 연 뒤 6월에나 판단할 예정이다. 대선은 11월에 열린다. 연방대법원이 하급심처럼 면책 요구를 기각한다고 한들 본안인 반란 혐의 재판 결과는 대선 전에 나오기 힘들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재판을 신속 심리로 진행해달라는 특검의 요구를 거부했다. 사법 절차가 정치 일정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사법 절차를 늦추는 방식으로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우선권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다른 혐의도 아니고 반란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 대선 출마 자격을 줘도 되는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로 몰아가지 않는 확고한 재판중심주의의 나라가 미국이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해 ‘셀프 사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사법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