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보다 자존심 지키는 맛집[공간의 재발견/정성갑]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7일 23시 27분


“여기 11시 오픈 아니야?”

강원 평창군 횡계리에 있는 중국집, 진태원에 도착해 함께 간 친구들과 한 말이다. 이제 막 오전 10시를 넘긴 시간에도 이미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강원도 대표 선수라 할 만한 맛집.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리조트를 찾는 스키어와 스노보더에게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대표 메뉴는 탕수육이다. 바삭하게 튀겨 적당하게 식힌 돼지고기에 달콤한 소스를 넉넉하게 붓는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 그 위에 밭에서 막 수확해 씻은 듯한 싱싱한 부추와 배추를 고명으로 듬뿍 올리는 것이 포인트다. 데치거나 익히지 않은 생채소가 쫄깃한 돼지고기와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아삭함과 산뜻함이라니. 스키를 타야 해서 음주는 패스했지만 고량주와 곁들여도 환상의 궁합을 보여줄 맛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은 단 6개. 영업시간도 짧고, 공간도 좁으면 하루 매출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 아니냐 싶었는데(별걱정을 다한다) 며칠 안에 또 먹을 요량으로 포장해 가는 사람도 많았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이런 곳에서 맛만큼이나 크게 와 닿은 것이 있으니 바로 직원분의 능숙하고 여유로운 응대다.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1시면 얼추 하루 영업이 마무리되는 초이상적 근무 환경. 그 흐름에 맞춰 시스템도 착착 효율적으로 잡혀 있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흘러간다. 이날 영업 종료 안내판이 입구에 세워진 때는 대략 오전 11시 40분. 그 뒤로도 수도 없이 현관문이 열리며 “끝났어요?”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으나 직원분은 “문 열기 전부터 대기하신 분이 30팀이 넘었네요. 오늘은 끝났습니다” 하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바짝 하고 퇴근할 수 있으면 나도 즐겁게 일할 것 같아.”

내가 사는 서울 서촌에도 ‘가볍게’ 돌아가는 중국집이 있다. 청운초등학교 옆에 있는 중국. 맞다. 상호 자체가 중국으로 오전 10시에 시작해 재료가 소진되면 미련 없이 문을 닫는다. 나는 이곳에 갈 때마다 홀 서빙을 맡는 분의 목소리와 움직임의 리듬감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성과 톤으로 조리실에 메뉴를 전달하고 차분하지만 정확하게 음식을 나른다. 한마디로 프로의 향기가 가득하다. 소문으로 들으니 이곳 사장님들은 이런저런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며 인생을 즐긴다고. 맛이 좋다고 가정했을 때, 식당의 경쟁력은 주인의 인생관에도 있지 않나 싶다. 즐겁게,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강구한 규칙과 규율. ‘하루에 이만큼만 벌어도 됩니다’ 하는 자신감. 이런저런 욕심을 내려 놓을 때 인생에도 시나브로 ‘맛’이 생겨나는 것 같다.
#자존심#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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