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 교회에서 주일예배 때 겪은 일이다. 팔순을 넘긴 한 노인이 강대상 아래로 내려오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순간 잠잠해진 청중 사이로 무거운 침묵의 공기가 내려앉았다. 노인은 세월의 무게로 힘에 겨운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강대상 뒤에 서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온몸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여러분께 고통을 드린 점 사죄드립니다. 일본인 목사가 거룩한 한국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는 한국에 파송된 지 43년 된 서울일본인교회의 요시다 고조 목사였다. 그가 한국에 처음 부임한 1981년은 이미 한국의 기독교인 수가 일본보다 월등히 많을 때였다. 요시다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자신의 파송 이유를 “한국인들께 사죄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마태복음 말씀을 강론하며 가장 가까운 이웃을 침략한 일본의 죄를 회개했다.
이달 1일로 3·1운동 105주년을 맞았지만 일본 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의 과거사 반성은 아직 요원하다. 일본 역대 총리 중 최장기 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최근 한글로 번역 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에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실수로 치부했다. 일본 총리 중 처음으로 한국 식민지배를 사과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사실상 부인한 것이다.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로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무라야마 담화를 토대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러고도 일본이 한국의 ‘위안부 배상 판결’을 놓고 정부 간 신의를 운운할 수 있나.
아베는 회고록에서 “일본은 과거 몇 번이나 사과해왔다. ‘여러 차례 사과를 시켰으면 이제 됐지’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썼다. 사실 일본 극우 정치인들뿐 아니라 최근 국내 일각에서도 “그만 사과해도 되지 않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역사 반성에는 시효가 없다. 침략의 역사를 한시라도 잊으면 1차 대전 발발 25년 만에 2차 대전이 터진 것처럼 역사의 비극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베가 회고록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마치 일본만 식민지배를 한 것처럼 쓰였다.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관점이 빠졌다”며 “전쟁 전에는 유럽과 미국도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한 것은 특히 우려스럽다. ‘서구 열강들도 다 했는데 왜 우리한테만 이러느냐’는 그의 태도는 1차 대전에 이어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인들의 인식 체계와 흡사하다.
1919년 6월 독일의 전쟁 배상 책임을 규정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자 당시 독일인들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에도 전쟁의 책임이 있다며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알자스로렌 반환 등에 대해 과도한 징벌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독일은 그 1년 전 내란으로 취약해진 소련을 압박해(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발트 3국과 조지아 등의 영토를 강제로 뺏은 바 있었다.
일본은 독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화해는 과정이며, 한 번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가 아픔을 잊을 때까지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요시다 목사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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