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자화상[이은화의 미술시간]〈310〉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3일 2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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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가 한 손에 꽃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튀어나온 배 위에 얹었다. 임신부로 보인다. 당차면서도 강렬한 눈빛으로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 이 여자는 누굴까? 그녀가 손에 든 두 송이 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그림은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데르존베커가 그린 ‘왼손에 두 송이 꽃을 든 자화상’(1907년·사진)이다. 모데르존베커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그녀의 자화상은 여느 화가들의 것과 달리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서른 살이 되던 1906년 그녀는 자신의 누드화를 그렸다. 미술사 최초로 여성이 그린 누드 자화상이었다.

이 그림 역시 임신한 상태의 화가가 그린 최초의 자화상이다. 여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대에 모데르존베커는 개인 교습을 통해 화가가 되었고, 브레멘 근교의 미술공동체 마을에서 활동했다. 이곳에서 화가 오토 모데르존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창작에 열중하기 위해 홀로 파리로 떠났다가 가난에 못 이겨 다시 남편 곁으로 돌아왔고 곧 임신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화가는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을 때였다.

꽃은 사랑과 다산을 상징한다. 두 송이 꽃은 창작과 잉태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일 테다. 두꺼운 눈꺼풀과 진한 분홍빛 얼굴은 가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눈빛만큼은 자신만만하고 강렬하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피카소나 마티스가 그린 여성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혀 이상화하지 않았고 남성의 시선에 맞춘 관능미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여성 화가이자 엄마로서의 당당함과 자존감의 표현이었다.

모데르존베커는 출산 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을까?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그녀가 남긴 마지막 자화상이 되고 말았다. 그림을 완성한 해에 딸을 출산했으나, 출산 합병증으로 19일 후 사망했기 때문이다. 향년 31세였다. 결국 이 그림은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그린 가장 슬픈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자화상#꽃#임신부#파울라 모데르존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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