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시작되면 학과에 풋풋한 대학 신입생뿐 아니라 신임 교수가 들어오기도 한다. 신임 교수는 부임하면 첫 세미나를 열어 학생들과 동료 교수 앞에서 자신의 연구에 관해 설명하고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지 소개한다. 이론물리학을 공부한 젊은 30대 초반 신임 교수의 의욕적인 첫 강연을 듣는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학과 교수들 전부가 신임 교수 환영회를 하러 신촌 로터리 복어 요리집으로 갔다. 학과의 전통처럼 이런 날엔 귀한 복요리를 함께 먹는다. 나 역시 첫 세미나를 하고 복어 요리집으로 갔다. 당시 원로 교수님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을 때 무척 힘겨웠던 것이 기억난다. 술에 취했다기보다는 뭔지 모를 긴장된 분위기가 낯설고 힘들었다.
이번 환영회에서 나는 투명한 복어회와 함께 복어 꼬리를 살짝 태워 맛을 낸 청주를 시켰다. 옆 연구실 블랙홀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 김 교수는 음료 메뉴에도 없는 막걸리를 특별히 주문했다. 복요리와 막걸리라니. 특이한 조합이었다. 주인공인 신임 교수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해서 제로 콜라를 시켰다. 건배할 때 정종 잔을 부딪치며 생각했다. 투명한 복어회와 제로 콜라의 조합은 무슨 맛일까. 새로운 30대 젊은 교수의 놀라운 취향에 흉내 낼 수 없는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신임 교수의 전공은 이론물리학 분야 중 하나인 끈 이론이다. 끈 이론의 시작은 아인슈타인 시대까지 올라간다. 1920년대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완벽한 이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바로 저 유명한 ‘통일장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자신감으로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이론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다. 중력의 세계와 양자의 세계를 하나로 결합하는 이론은 천재인 아인슈타인에게도 쉽지 않은 주제였나 보다.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1970년대 무렵, 세상에 존재하는 4가지 기본 힘 가운데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은 하나의 이론으로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론이 양자장론이다. 하지만 이 양자장론에 중력을 포함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끈 이론이다.
끈 이론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기본 단위가 하나의 점처럼 생긴 ‘양자’가 아니라 구조를 갖지 않는 진동하는 ‘끈’이라고 설명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이론이 나온 지 벌써 50년이 흘렀다. 끈 이론의 가설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물리학자인 내게도 어려운 신임 교수의 끈 이론 설명을 들으면서 ‘과연 반세기 동안 풀리지 않은 이 물리학 이론은 언제쯤 풀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식을 마치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블랙홀 김 교수가 한마디 건넨다. “그때도 완전하게 몰랐고 지금도 모르는….” 어쨌든 제로 콜라를 좋아하는 신임 교수 홍 교수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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