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애도사[이준식의 한시 한수]〈255〉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4일 23시 38분


주옥같은 시문을 지어온 60년, 누가 그댈 죽음의 길로 몰아 시선(詩仙)이 되게 했나.

떠도는 구름처럼 얽매이지 않았기에 이름은 거이(居易), 무위자연의 삶을 좇았기에 자가 낙천(樂天).

어린애조차 그대의 ‘장한가(長恨歌)’를 읊어대고, 오랑캐도 ‘비파행(琵琶行)’을 부를 줄 알았지.

길을 가면 누구든 듣게 되는 그대의 문장, 그대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비통하다오.

(綴玉聯珠六十年, 誰敎冥路作詩仙. 浮雲不繫名居易, 造化無爲字樂天. 童子解吟長恨曲, 胡兒能唱琵琶篇. 文章已滿行人耳, 一度思卿一愴然.)―‘백거이를 애도하다(조백거이·弔白居易)’·당 선종(宣宗·810∼859)

한 시인이 죽어서 ‘시선’이 되었으리라 평가한 건 고인에 대한 최고의 애도사(哀悼辭)이리라. 원래 이 칭호는 이백의 탁월한 시재를 상징하는 대명사로만 쓰였는데 말이다. 하물며 그 애도의 주체가 황제의 신분인 바엔. 백거이가 사망한 지 얼마 후 즉위한 선종이 고인의 문학적 성과와 삶의 궤적에 대해 보낸 찬사는 실로 구체적이다. 우선 60년 창작의 성과를 ‘주옥같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중 대표작은 어린애나 이방인까지도 입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친숙하고, 누구든 길을 걷다 보면 접할 수 있는 게 또 고인의 작품이라고 찬탄했다. 뿐이랴. 이 시에서는 무위자연의 도가적 삶을 지향하면서 세속의 명리에 초연했던 고인의 낙천적 성품까지 우러르고 있으니 최상의 예우를 갖춘 추념(追念)의 시로 손색이 없겠다.

시인에 대한 당 황제의 예우가 각별했던 사례는 부지기수. 여황제 무측천(武則天)은 신하들과의 나들이에서 황포(黃袍·곤룡포)를 상으로 내걸고 시재를 겨루게 했고, 현종(玄宗)은 이백의 시재에 반하여 즉석에서 관리로 발탁했다. 헌종(憲宗)은 백거이 시의 현실성을 높이 사 외직에 있던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이준식의 한시 한수#애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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