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스트레스가 가득한 날엔 매콤한 떡볶이나 빨간 고추장을 듬뿍 넣은 양푼 비빔밥을 먹는다. 지친 업무를 마치고 회식하는 장면에서는 삼겹살과 소주가 빠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목숨을 건 미션을 하는 장면에 등장한 달콤한 ‘달고나’는 전 세계적인 열풍마저 불러일으켰다.
K-콘텐츠의 인기를 타고 한국 음식에 대해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한식 전문점이 세계 곳곳에서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당의 메뉴를 넘어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장소까지 침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구 반대편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사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정기적으로 한국 음식을 급식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대학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자국 음식에 보이는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음식들의 궁합을 따져 최고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특정 상황에 대부분 한국인이 비슷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파전을, 이사하는 날엔 짜장면을 먹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뿐만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대부분 한국 음식의 이름을 댔다. 이유를 묻자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 음식을 먹는 거지”라고 했다. 나는 곧 음식이 그들에게 단순한 취향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물놀이하고 컵라면을 먹었던 추억, 아플 땐 부모님이 만들어 준 흰죽을 먹으며 병을 이겨냈던 기억들이 한국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음식과 연결고리를 형성한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선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독특한 관계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내심 부럽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의 한식 열풍, 한국인들의 한국 음식에 대한 타고난 사랑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국내 상황은 반대로 흐르는 것만 같다. 한국에 들어온 지 15년, 요즘처럼 한국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하는 경향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때가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요즘엔 아침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드물다. 쌀 소비 역시 점점 감소하고 있다. 단순히 식습관의 변화만이 원인은 아니다. 로컬 음식점, 특히 저렴한 가격에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백반집 같은 곳이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백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고민이 깊다. 한정식집은 가볍게 방문하기엔 너무 고가고, 고깃집은 특색이 있지만 매일 먹기엔 부담스럽다. 적당히 분위기도 좋고 다양한 종류의 한식 선택지가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외식 메뉴로 외국 음식을 선호하게 된 것 외에 물가 상승, 임대료 상승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영화감독님과 함께하는 토크쇼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감상평을 받는 코너가 있었다. 당시 나는 모든 백반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비싼 이탈리아 레스토랑만 남게 된 한국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백반 어벤져스’를 결성하여 한국 식당의 부흥을 꾀하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작성했고, 큰 호평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이것은 그저 단순히 재밌는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마라탕집, 파스타집, 일식집이 한가득이다. 불과 몇 년 만에 내 상상이 거의 실제화되어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제는 정말 ‘백반 어벤져스’가 나타나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도와줘요, 백반 어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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