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역사 학전 오늘 폐관…학전이 남긴 문화계 과제[광화문에서/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4일 23시 53분


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대학로 소극장의 버팀목’이라 불리던 학전이 33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15일 문을 닫는다. 예고는 지난해 11월 부터 이어졌지만, 막상 폐관의 ‘그날’을 마주하니 많은 생각이 오간다.

학전의 폐관은 학전의 상징과도 같은 김민기 대표의 건강 악화와 경영난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막을 내린 학전의 ‘지하철1호선’ 공연 후 출연진 및 학전 출신 배우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선 김민기는 위암 4기의 환자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듯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학전 출신 배우들은 폐관 전날까지 ‘학전 어게인’ 공연을 펼쳤다. 김민기는 투병 와중에도 배우들의 리허설 모습을 담은 영상을 전송받아 휴대전화로 보고, 또 보며 모니터링을 했다고 한다. 가수 박학기 등에 따르면 김민기는 “요즘 학전 어게인 콘서트가 늘 궁금하고, 건강상 극장을 직접 찾진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학전 극장에 와 있다”라는 말을 출연 배우 및 가수들에게 종종 건넸다고 했다. 그에게 학전은 인생 그 자체였다.

공연의 주 소비층인 20, 30대 젊은 세대들에겐 어쩌면 ‘학전’은 낯선 소극장일 테다. ‘지하철1호선’ 등 학전의 주요 레퍼토리 공연 역시 접한 경험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학전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와 달리 2000년대 들어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미스 사이공’ 등 정식 라이선스를 맺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유명 뮤지컬 등이 국내에 유입됐고, 공연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학전이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주도하며 중소형급 연극·뮤지컬 공연을 이끌긴 했지만, 비교할 수 없는 자본력과 시스템을 갖춘 후발주자들과의 작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굵직한 스타들을 배출한 학전이었지만, 스타 캐스팅이 공연 흥행의 방향키가 된 상황에서 높은 출연료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기용할 수도 없었다. 학전의 폐관을 안타까워하는 학전 출신 스타들도 돌이켜보면 경영난을 겪고 있던 학전의 레퍼토리 공연에 다시 출연한 경우를 보기 쉽지 않았다. 높아진 개런티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학전 공연을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방송 등을 통해 ‘우리 모두는 김민기에게 빚을 졌다’고 한 고백은 괜한 말이 아닐 테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돈과 시간을 들여 작품을 즐기는 만큼, 선택의 기준도 깐깐할 수밖에 없다. 김민기의 학전뿐 아니라 대중문화사엔 상징성을 갖는 작품이나 단체, 인물 등이 여럿 있다. 하지만 그 상징성과 의미가 계속된 성장을 보장하진 않는다. 대중성과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기의 학전은 문을 닫는 그날까지 예술인들에게 많은 메시지와 과제를 던져줬다고 본다.

‘우리 나갈 길/멀고 험해도/깨치고 나가/끝내 이기리라.’ 김민기가 만든 노래 ‘상록수’의 가사 중 일부다. 끝내 이겨내길 바랐지만, 학전은 결국 경영난 등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젠 역사 속 극장이 돼버렸다. 그래도 학전이 남긴 작품과 추억 등은 많은 이에게 잊혀지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테다. ‘굿바이, 학전.’

#광화문에서#김정은#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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