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앙 부처 공무원은 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각종 대책에 대해 “소득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정하던 것도 이젠 다른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신생아 특례대출을 소득 기준에 따라 다르게 지급하는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지원 대상 소득 요건을 연간 1억3000만 원 이하로 한정하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출생신고에 남편 이름을 올리지 않는 편법을 공유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소득 기준의 경계선에서 지원 여부가 엇갈린 부부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복지 정책에 대해선 모두에게 지급하는 무차별적 현금 살포성 정책 대신 꼭 필요한 대상자에게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미 저출산 문제가 복지의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게 문제다.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에 대해선 소득 기준을 폐지한 것처럼 필수 분야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지원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 소득 기준을 운운하며 행정적인 잣대로만 접근하는 건 안이한 발상이다.
서울에 사는 한 맞벌이 30대 가장은 “소득 기준으로 부모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 아니냐”며 “주택자금대출 같은 주거 정책까진 아니더라도 육아 돌봄 정책은 소득 기준을 따질 게 아니라 누구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13년 전 정치적 명운을 걸고 선택적 복지를 주장했던 오세훈 서울시장마저 저출산 위기 앞에선 각종 지원 정책에 대해 소득 기준은 물론이고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마저 하나둘씩 폐지하는 판이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도 신년 간담회에서 “모든 저출산 정책에서 소득 기준을 폐지하자”며 정책 대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처럼 지독하게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분야도 없다. 결혼부터 임신, 출산, 육아, 보육, 교육, 입시, 취업, 그리고 다시 자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반세기 동안 이런 삶의 궤적 곳곳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방치한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선 저출산 공약을 대대적으로 내놨고, 자녀 1명을 출산할 때마다 1억 원을 내놓겠다는 기업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지난해 10∼12월 합계출산율은 0.65명,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 정책은 대대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당장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은 지나야 정책 효과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소득 기준 폐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병원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선출직 공무원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책임감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가야 한다. 수년 뒤에 있을 선거만 염두에 두고 유권자의 눈앞에 당장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표퓰리즘 정책만 남발해선 나라의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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