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 음악 ‘하늘 가까이’가 그리워질 때[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8일 23시 30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고된 해외 출장 귀국 길엔 멀리서 대한항공 연파란색 기체만 보여도 안심하곤 했다. ‘저거 타면 집에 간다’를 실감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유독 짐이 무겁던 출장, 이코노미 클래스 복도를 지나 정신없이 짐을 넣고 자리에 앉던 중 기내 스피커에서 나오던 이름 모를 경음악이 그날따라 좋았다. 착륙 후 실례를 무릅쓰고 승무원께 노래 이름을 물었다. ‘하늘 가까이’라고 했다.

‘하늘 가까이’는 2009년 1월 출시된 대한항공 이미지 송이다. 신승훈이 작곡하고 노래까지 했으나 기내에서는 노래가 없는 연주곡 버전을 틀어주었다. 이 노래는 평범함과 보편성이 수준 높게 구현돼 멋지다.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튀려 하지 않는다. ‘좋은 여행용 경음악’ 이상의 욕심이 없다. 항공 여행과 어울리는 고양감, 동시에 내 여행에 끼어들지 않는 단정함. 이 노래를 안 뒤에도 출장이 많았고, 기내에서 ‘하늘 가까이’를 들으며 안도하곤 했다. 이 노래가 익숙해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 가까이’가 사라졌다. 2019년 11월부터 SM과 계약해 자사 유닛 ‘슈퍼M’이 부른 ‘레츠 고 에브리웨어’를 출시하고 그에 맞춰 기내 안내 동영상도 새로 찍었다. 그 노래도 멋졌다. 워낙 최신 K팝 느낌이라, 노래를 듣다 보면 구형 여객기 좌석에서 물 한 잔만 홀짝거려도 첨단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 같았다. ‘하늘 가까이’가 그리웠지만 세상의 변화 앞에서 개인은 늘 힘이 없다. ‘레츠 고 에브리웨어’의 기백에 익숙해지던 중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쳤다.

일본 ANA는 대한항공과 반대로 수십 년째 쓰는 탑승곡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하카세 다로의 ‘어나더 스카이’. 이 역시 ‘하늘 가까이’처럼 완성도 높은 심심함이 있다. 적당히 고조되는 흐름, 심상을 자극하는 선율, 너무 세련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절묘한 대중성. 탑승곡의 스탠더드라 할 만한 완성도다. 그 덕인지 코로나 기간 동안 이 노래의 동영상 링크에는 ‘비행이 그립다’ ‘여행의 추억이 생각난다’는 일본어 댓글이 많았다. ANA는 코로나 기간 동안 텅 빈 공항에서 하카세와 사내 오케스트라가 거리 두기를 한 채 ‘어나더 스카이’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내게 이 사례는 그 자체로 한일 양국 차이의 상징이다. 원칙이다 싶으면 변함없이 유지하고 개선시키는 일본, 여러 상황에 맞춰 모든 걸 바꾸는 한국. 대한항공은 그새 슈퍼M과도 이별하고 2024년부터는 인공지능(AI) 승무원이 등장하는 안전 수칙 방송을 시작했다. ANA는 새로 녹음한 ‘어나더 스카이’를 틀어준다. 내겐 둘 다 매력적이다. 세상이 둘 중 하나로 쏠린다면 오히려 그게 곤란하다. 역동성과 항상성 사이 어딘가의 절묘한 접점이 양국의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다만 감정적으로 난 아직 기내에서 듣는 ‘하늘 가까이’가 그립다. 공항 가는 길에 그 노래를 찾아 들을 때도 많다. 작사가 심현보의 가사도 예쁘다. ‘자 이제 날아올라, 저기 하늘 가까이. 꿈은 날개가 되고 다시 바람이 되지.’ 이렇게 담담하고 완성도 높은 수사는 요즘 오히려 더 보기 힘들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하늘 가까이 탑승곡 재생 특별편’ 같은 걸 만들어 준다면 나는 기꺼이 탈 의향이 있다.

#기내음악#하늘 가까이#대한항공 이미지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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