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은 과거 거의 모든 정당의 타깃이었다. 적어도 양당제 국가에선 그렇다. 양쪽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면 승패는 중도층의 손에 맡겨진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중도 확장’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강조하며 ‘중도 개혁’을 설파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등 최근 야권의 태도는 다르다. 강경 일변도로 비친다. ‘2찍’ ‘집에서 쉬라’ 등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은 당 대표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속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다. 혐오와 증오의 발언에 환호하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아예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당의 목표로 제시했다. 2년 전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출범한 정부를 향해 사실상 ‘탄핵’을 공개 거론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엔 중도층의 표심을 의식해 의원들도 극단적인 언행은 자제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마치 중도 확장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듯 행동한다.
왜 그럴까. 한동안 민주당은 위기였다. 핵심 지지층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화 조사를 하건, ARS 조사를 하건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율은 부동층의 증감에 따라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지지 정당 없음’ 답변이 많은 조사에선 민주당의 지지율이 더 낮게 나타나는 식이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반감을 느끼는 일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부동층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이 대표의 독선적인 행태 그리고 종북세력인 통진당 후신인 진보당 인사들을 대거 당선권에 배치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반감은 조국혁신당 지지율로 옮겨 갔다. 조국혁신당의 지지층은 뚜렷하다. 진보 성향, 4050세대, 수도권과 호남에서 20% 안팎의 견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제3신당의 지지율은 크게 통상 무당파를 흡수하는 확장과 기존 정당 지지자들이 옮겨 오는 이동으로 나뉘는데, 조국혁신당의 경우 현재까지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이동이 크게 나타난다. 조국혁신당이 부동층으로 이동했던 민주당 지지층의 야권 이탈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야권은 복원되기 시작한 전통적 지지층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진보 결집론자들은 야권의 단결이 이번 총선 승리의 핵심 과제라고 본다. 이들은 네거티브 공세를 중시한다. 믿는 구석은 오직 하나, 정권 견제 심리다. 야권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팬덤’에 휘둘린다는 비판에도 이재명·조국 대표가 직접 강성 지지층이 듣고 싶어하는 이른바 ‘사이다’ 발언과 행동,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다. 정권심판론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셈법이다.
야권 전반에 강경 목소리가 득세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도 표심을 외면하는 선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민주당은 선거 판세를 이끌 만한 새 인물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권심판론에 의지하는 반사이익만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3, 4%의 격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 선거를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갈라치기’의 ‘플랜 A’로 계속 갈 것인지, 중도층 끌어안기를 위한 ‘플랜 B’로 전략을 틀 것인지 민주당이 결단해야 할 때다. 강경으로 질주하는 민주당의 전략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판명 나기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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