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이 그제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시민사회수석을 사퇴시킬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언론을 상대로 강압·압력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참모의 부적절한 발언을 두고 본인 사과로 상황이 종료됐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황 수석은 지난주 대통령실 취재기자 몇몇과 오찬을 하면서 “MBC는 잘 들어라. … 내가 정보사령부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기자가)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게 문제가 됐다”는 취지의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농담”이라고 주워 담기는 했지만, 정부를 향해 비판 칼럼을 쓴 언론인이 출근길에 정보사 요원들로부터 25cm 회칼로 테러당한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과거 정부의 언론 탄압을 말하다 나왔다는 게 본인 해명이지만, 위협적으로 느낄 만한 발언이었다. 황 수석은 이틀 뒤에야 “상대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4줄짜리 사과문을 냈다.
그가 “잘 들어라”고 지목한 방송사는 ‘바이든-날리면’ 보도로 대통령실과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이다. 해외 순방 때 대통령실이 해당 방송사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 있는 보도 문제는 원칙대로 대응해 가리면 될 일인데도, “잘 들어라”며 뜬금없이 테러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발언 당사자가 사회 곳곳의 다양한 민심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시민사회수석이란 점도 더 충격적이다. 대통령실 누구보다도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자리다. 게다가 그는 공영방송 KBS의 9시 뉴스 앵커 출신이다.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야 할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저열하고 위험한 언론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실은 야당의 사퇴 프레임에 걸려들어 대통령 인사권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한 듯하다.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안이한 생각이다. 오죽하면 여당 안에서도 “지체 없는 사퇴가 국민 눈높이”라는 지적이 나오겠는가. 무리한 방송심의 논란, 사라져 버린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말하는 것처럼 언론 자유에 대한 몰이해가 용산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실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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