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올린 사교육 대책, 환자 불안 키우는 의대 증원
케인스 “장기적으론 다 죽어”… 눈앞의 희생·부작용도 중요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지난 정부 말기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 한 고위 관계자는 필자에게 “3기 신도시 등 정부가 발표한 공급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다음 정권이 누가 되더라도 부동산 가격은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혼란이 극심한 와중에 ‘다음 정권’ 운운하는 걸 보며 한숨이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달 14일 교육부의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 분석’ 발표를 보면서 당시 생각이 났다.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는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과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4.5% 늘며 27조1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킬러(초고난도) 문항 배제 등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기조의 급격한 변화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자극해 학원으로 몰린 것 아니냐”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불안 요인 때문에 사교육 증가가 있었던 건 맞다”면서도 ‘정책의 시차’를 거론하며 “킬러 문항 배제 등은 가야 할 길이고 안착되면 사교육 경감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 지난해 6월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 문제를 들고나왔을 때부터 ‘급격한 변화가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교육부 관계자도 14일 브리핑에서 “걱정 많이 했다. (4.5% 증가는) 예측보단 상승세가 꺾인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런데 교육부는 지난해 9월 국회에는 “사교육비 지출을 전년보다 6.9%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사교육비 상승을 예상하고도 국회와 국민 앞에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년엔 반드시 감소시킬 것”이란 교육부 말에도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 지난해 ‘역대급 불수능’과 20일 정원 발표로 더 거세질 ‘의대 광풍’ 등 사교육비 상승 요인도 즐비하다.
물론 교과과정 내용만 수능에 출제하겠다는 방침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계속 사교육비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초래하는 건 물론, 다음 정권에서 기조를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장기적 기대효과’가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장기적 효과’를 거론하며 ‘단기적 희생과 부작용’에 눈을 감는 건 의대 입학정원 확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2000명씩 늘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부는 “원래 연간 3000명씩 늘려야 하지만 1000명은 의료 수요 관리 등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정책으로 보완한다면 1500명, 1800명이 안 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의대 정원을 늘려도 의사 배출까지는 길게는 10년 걸린다. 장기화되는 환자의 고통과 국민의 불안을 생각한다면, 대학별 정원 배분 발표를 속전속결로 강행하는 대신 유연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시장경제가 장기적으로 알아서 균형을 잡으니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반박했다. ‘장기적으로 괜찮아진다’는 주문만 되풀이하는 대신 눈앞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사교육비와 의대 증원을 담당하는 정부 당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눈앞의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들도 새겨야 할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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