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현수]엔비디아 현장에서 본 불붙은 AI 칩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4일 23시 45분


‘슈퍼스타’ 등극 AI 칩… 패러다임 전환 실감
민간 투자 열기에도 美정부 “수조 원 보조금”

김현수 뉴욕 특파원
김현수 뉴욕 특파원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장 같지 않아요?”

옆에 앉은 미국 기자가 말을 걸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을 기다리던 터였다. 이곳은 18일 엔비디아 개발자 행사 개막을 알리는 기조연설이 열린 미 새너제이 SAP 센터.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지역 선수단의 안방 구장인 현장에는 1만1000여 석이 가득 차 있었다. 언론인, 금융 애널리스트, 산업 애널리스트, 전시 협력사 엔지니어 등 각각 수백 명씩 그룹별 구역을 나눌 정도였다.

테크 기업의 개발자 행사는 말 그대로 개발자 및 협력사들에 ‘우리 이런 기술을 내놓을 것이니 여기에 맞춰서 만들어 보자’는 취지의 행사다. 고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한 후 개발자 행사가 좀 더 대중적인 신제품 공개의 장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됐지만 그래도 이번 엔비디아 행사 열기는 독특했다.

데이터센터 서버 속에 숨어 있어 소비자들은 만져볼 일도 없는 반도체 신제품 행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라니. 황 CEO가 차세대 AI 칩 ‘블랙웰’ 시리즈 실물을 들어 보이고, 1만1000여 명이 동시에 박수를 치는 걸 지켜보며 반도체가 AI의 슈퍼스타로 등극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 월가에서 이번 행사를 전설적 음악축제에 빗대 ‘AI의 우드스톡’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일 것이다.

‘슈퍼스타 칩’의 시대가 돌아왔음은 다음 날 황 CEO의 기자간담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였다. 무대 위에서 질문을 받던 황 CEO는 조명 때문에 기자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아래로 내려왔다. 대만계 미국인인 그는 대만 기자를 보고 반갑다며 인사를 나눴고, 여러 차례 대만 파운드리 TSMC와의 깊은 관계를 언급했다. 손 들고 순서를 기다릴 시간도 없어 보여 무작정 ‘삼성은요’라고 물었다. 그는 한국 기자들의 후속 질문도 일일이 받으며 HBM이 “세계 데이터센터 메모리 칩을 대체할 것”임을, “어마어마한 성장 사이클”이 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발언 5시간 후 한국 증시가 개장하자 삼성전자의 주가가 5% 이상 뛰는 것을 보고 AI 칩 시장의 파급력에 놀랄 따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장의 패러다임이 급변할 때는 순위 변동을 노리는 무서운 후발 주자들이 있다. 엔비디아가 AI 칩 생태계의 주인공이 돼 시가총액이 5년 전의 20배가량 뛰어 한국 국내총생산 규모보다 높아질지 아무도 몰랐다. 메모리 칩 2위 이미지가 강했던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1위로 우뚝섰다. 1980년대 일본과 한국 반도체 기업의 성장을 막으려 반덤핑 소송전을 남발하고도 3위로 뒤처졌던 미 마이크론도 삼성보다 먼저 HBM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양산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슈퍼스타 칩 열풍은 순수하게 민간에서 나온 폭발적 성장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여기에 보조금까지 얹겠다고 나서고 있다. 얼마 전 인텔에 대한 85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발표했고, 마이크론도 보조금을 기다리고 있다. 천문학적 보조금을 두고도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과 미 반도체 업계는 “일회성이라 불충분하다”며 ‘칩스법 2’와 같은 추가 지원 법안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반도체 국가전의 열기는 더욱더 뜨거워져 가고 있다.

#엔비디아#ai#칩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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