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한반도는 이미 ‘트럼프 태풍’ 영향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7일 23시 45분


“우크라 지원 끊어 전쟁 끝낸다” 트럼프식 마법
‘질서와 가치 붕괴’ 대비 냉정한 현실 인식부터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플로리다 마러라고 저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오르반은 회동 후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매우 상세한 계획을 갖고 있더라”며 이렇게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복귀하면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돈을 주지 않으면 유럽도 자금을 대지 못할 것이고 결국 전쟁은 끝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내가 대통령이라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한 트럼프다. 오르반의 전언대로라면 트럼프의 ‘24시간 내 종전’ 마법이란 결국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어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을 강제하는 매우 손쉬운 방법이다. 사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제물로 바치는 이런 트럼프식 해법은 이미 작동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한 안보예산 패키지가 미국 의회에 묶여 언제 처리될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트럼프는 이미 그의 재집권 가능성만으로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벌써부터 트럼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라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각국이 부산하게 방위비를 늘리고 있지만 그간 사령부 조직과 전력, 정보까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했던 유럽이 단기간에 자체 통합방위를 갖출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런 한편에선 오르반 같은 ‘리틀 트럼프’가 친러시아 행보를 강화하며 유럽 내부의 분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의 판 흔들기는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오르반 회동에 배석했던 프레드 플라이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서실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나와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의 개인적 외교를 재개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의 러시아 공급 중단을 설득하면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북한과 러시아 두 독재자를 상대로 ‘3각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트럼프 2기 출범 후 북-미 협상 재개는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5년 전 트럼프와의 거래에서 쓴맛을 봤던 김정은이 쉽게 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선지 북한에 내줄 ‘선물’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VOA에 함께 출연한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은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다. 그런 인정이 모든 논의의 시작점이다”라고 했다.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 같은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함으로써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논의는 트럼프 2기 국방장관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이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북핵 현실론과 맞닿아 있다. 그는 북핵을 이미 ‘호리병 밖으로 빠져나온 지니’에 비유하며 “이젠 기대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핵 동결-제재 완화’ 협상론에 대해 “검토할 만하다”고 했고,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군축협상론에도 “난 ‘왜 안 되느냐’에 찬성하는 쪽”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이미 ‘트럼프 태풍’ 영향권에 들어섰다. 트럼프 1기를 돌아보면 그가 불쑥불쑥 던진 무모한 발상들이 실현된 것은 정작 많지 않다. 진짜 괴로운 것은 트럼프의 변덕과 기행, 예측 불가의 불확실성이었다. 트럼프 2기는 난폭한 질서 파괴, 극심한 가치 전복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원칙과 가치 못지않게 냉정한 현실 인식 아래 유연성과 민첩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미국 대선은 7개월 남았다.

#트럼프 태풍#우크라이나 전쟁#냉정한 현실 인식#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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