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재국의 우당탕탕]〈91〉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8일 23시 27분


3월 1일 오전에 운동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점프했다가 떨어지면서 왼쪽 발 뒤꿈치를 디뎠는데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처음에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는 생각을 못 했고 인대가 늘어났거나 발목을 삐었는 줄 알았다. 하던 운동을 멈추고 절뚝거리며 집에 왔는데 생각보다 발목이 많이 부어 있었다. 마침 공휴일이어서 며칠 후 정형외과에 가 사진을 찍어 보니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거라고 했다. 아킬레스건 봉합수술은 늦어지면 아킬레스건이 말려 올라가서 수술이 어려워진다는 의사의 말에 바로 입원하고 다음 날 수술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수술, 엄청 아팠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몰려왔고 진통제를 맞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저녁이 왔고 진통제를 한두 번 더 맞고 나서야 아침이 왔다. 아침에 얼굴을 만져 보니 밤새 울었는지 눈가로 하얀 눈물자국이 선명했다. 수술 후 밀린 잠을 몰아서 자듯 실컷 잤고 5일 만에 퇴원했다. 전치 8주 진단이 나왔기 때문에 병원에 더 입원해야 했지만 코로나와 의료대란 때문에 더 길게 입원할 수가 없다고 했다. 퇴원 후 집에서 목발을 짚고 생활했는데 양손으로 목발을 짚어야 하니 혼자 컵 하나, 숟가락 하나 옮기기가 힘들었다. 집 안에서조차 목발을 짚고 생활해야 했고 깁스를 한 채 잠을 자야 했다. 답답해서 잠시 외출하면 왜 이렇게 계단이 많은지, 평소 15분이면 걸어오는 거리를 목발 짚고 쉬엄쉬엄 걸으니 55분이 걸렸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적응해 가고 있었는데 1주일 후, 집에서 한쪽 목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왼발을 디디고 말았다. 왼발은 절대 디디면 안 된다고 했는데. 뚜둑! 내 머릿속으로 기분 나쁜 소리가 지나갔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병원으로 달려가서 MRI 촬영을 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수술한 윗부분이 또 끊어졌다고 했다. 당장 재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킬레스건이 부족하면 내 허벅지에 있는 인대를 잘라서 이어 붙여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내 허벅지 인대까지 동원해서 재수술을 했고 병실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는 순간 자꾸만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회사 그만두고 일주일 만에 부상 당해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 중이라니.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면 여행 온 사람만 보이고, 시장에 가면 장 보러 온 사람만 보이는 것처럼 병원에 있으면 아픈 사람들만 보인다. 이런 게 쉰 앓이라는 건가? 오십이 된 내 인생, 좀 쉬면서 정기 점검 받고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진정됐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아픈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프니까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병실에 있다 보니 혼자 있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찾아오면 엄청 고마웠다. 예전에는 젊다는 생각에 겁이 없었는데, 나이 들어서 겁이 없으면 나만 다친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 한 시간, 1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고, 그 귀한 시간을 남이 아닌 나에게 쓸 수 있을 때 내 인생은 더 값진 인생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내 몸에 난 상처는 더 이상 아픔이 아니었다. 내가 겪어낸 시간이고, 내가 이겨낸 풍경이었다.

‘이재국의 우당탕탕’이라는 이름으로 6년의 시간을 함께했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을 읽어 보니 “시간은 금이요, 시간이 약이며, 시간이 답이다” 이 세 문장으로 정리가 됐다. 남은 인생, 모두 행복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아픔#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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