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직한 가격에 풍성한 밥상을 차리기엔 양배추만 한 채소가 없다. 크기도 큼직하고 절여 먹어도, 삶아 먹어도, 볶아 먹어도 맛있는 ‘만능 채소’다. 덕분에 흙대파가 금(金)대파가 되고 상추 낱장을 세면서 먹는 수상한 시절에도 듬직하게 밥상을 지켜 왔다. 그랬던 양배추마저 귀해질 모양이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양배추(특급) 8㎏당 가격은 1만6570원으로 일주일 전인 23일(8696원)에 비해 거의 두 배가 올랐다. 양배추 한 통당 소매 가격은 전국 평균 5300원. 양배추 한 통 값이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9860원)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2월 사과, 배 등 과일 물가가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차례상 차리느라 가계가 휘청했다. 정부가 할인쿠폰을 뿌리며 과일값이 겨우 진정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채소값이 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흙대파, 애호박, 적상추가 이달 초에 비해 11∼52%가량 올랐다. 작황이 부진해 올봄 출하량이 급감한 채소들이다. 덩달아 밀가루, 과자, 설탕, 소금 등 가공식품 가격도 오르고 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듯하다.
▷인플레이션은 실질 임금을 감소시킨다. 그 고통은 서민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주부들은 장보기가 겁나고, 식당 주인들 사이에선 곡소리가 난다. 문제는 ‘비싼 채소’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추세라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채소값이 오르는 원인으로 기상 이변, 재배 면적 감소, 국제 유가 등 비용 상승을 꼽았다. 기상 이변으로 작황이 부진한 가운데 인건비며, 유가는 오르기만 한다.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재배 면적 감소는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전 세계가 기상 이변으로 인한 ‘푸드플레이션’(음식+인플레이션)으로 떨고 있긴 하다. 코코아, 올리브유, 감자, 오렌지 등이 자고 나면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OECD 식품 물가상승률은 10.5%였다. 한국은 농업 생산 기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기상 이변까지 덮쳐 밥상 물가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민심이 술렁이자 정부는 부랴부랴 세금을 투입해 할인 품목을 늘리고, 납품 단가를 지원하는 등 물가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대책은 시장 가격만 왜곡시킬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속적인 농업 인구와 재배 면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생산기반 구축엔 별 관심도 없던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대형마트를 찾아다니는 ‘보여주기 행정’에 여념이 없다. 평소에 장을 볼까 싶은 정치인들이 ‘대파값 875원 논쟁’을 벌이더니 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돈풀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쯤이면 누가 물가를 올리고 있는지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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