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몇 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모시고 갔다. 우리가 전시를 볼 때 주변에 있었던 어린 여자애는 우리를 가리키면서 “외국인이야!”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어머니께서는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여자아이 말의 뜻을 설명해 드리자마자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 밖에도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그 당시 한국에 산 지 2년이 넘은 나는 외국인으로 여겨지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어머니는 그 경험이 놀라울 뿐만 아니라 기분도 나쁘셨던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미국에 평생 사시면서 외국인이라고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한국인이 알다시피 외국인을 영어로 ‘foreigner’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이 모르는 것은 미국에서는 이 단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미국인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모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예를 들면 “반에 중국 유학생이 있다” 아니면 “러시아 사람이 운영하는 마트에 자주 간다” 같은 문장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모든 언어적인 차이점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화 차이점까지 반영한다.
미국인들이 foreigner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다른 나라에서 자란 후 미국에 귀화한 사람은 법적으로 똑같아 보여도 다르게 대우된다. 아일랜드와 터키계 이민자 부모를 둔 소설가 조지프 오닐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미국인’이고 어떤 사람은 ‘미국 시민’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뼛속 깊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인류가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으로 분명하게 나뉘지 않아서 미국인이 아님을 뜻하는 말이 굳이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요소는 미국에 원래부터 존재한 이민자 문화이다. 어떤 미국인들은 그 이민자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커서 망상조차 가지게 된다. 나의 미국인 친구는 그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미국밖에 없다고 가르쳤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한 잘못된 교육 때문에 다른 나라에 이주한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이민자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물론 이민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immigrant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태국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 사는 미국인들은 expat(expatriate·국외 거주자)이라 불린다. 나는 이주한 나라에 동화하지 않고 언젠가는 모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expat의 범주에 나를 넣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면에서 미국보다도 선진국이 된 한국에 사는 미국인들도 여전히 그렇게 불린다.
외국인을 foreigner나 expat으로 번역하는 것 외에 alien도 선택지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외국인등록증의 영어 이름은 Alien Registration Card였다. 그런데 2021년에 Residence Card로 바뀌었다. 이유는 외계인이라는 뜻도 있는 alien이라는 단어가 감정을 상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20세기 초 프랑스 활동가 장 조레스가 말했다. 인간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그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를 바꾼다고.
요즘 해외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오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아무리 국제화되어도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를 구별 짓는 지점은 애매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서 생활하는 방식의 독특한 장점을 만끽하는 외국인들은 번창할 수 있지만, 이방인의 자리에서 도피하려는 외국인들은 도태될지도 모른다. foreigner든 immigrant, 혹은 expat, alien이라고 불리든 한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한국에 사는 삶의 본질이 다르지 않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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