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은 증거의 왕’이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다. 법정 진술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피고인이 검찰,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공판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만큼 물증의 중요성은 커졌고, 수사기관들은 압수수색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압수수색영장 발부 건수는 2013년에 비해 2.5배가량 늘었다. 특히 수사기관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휴대전화와 PC 등 전자정보를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경찰의 디지털 증거 분석이 최근 10년 새 약 7배 증가했을 정도다.
압수수색 전자정보 사후 관리 논란
이렇다 보니 압수수색이 남발되는 건 아닌지, 범죄 혐의와 무관한 디지털 자료까지 수사기관이 갖고 있는지 등을 놓고 종종 논란이 벌어진다. 최근 야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민간인 사찰’ 의혹도 그중 하나다. 검찰은 이른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한 인터넷 매체 대표의 휴대전화를 통째로 복제한 ‘이미지 파일’을 서버(디넷)에 보관 중이다. 범죄와 무관한 사적인 자료까지 검찰이 보관하다가 들여다본다면 사찰이나 다름없다는 게 야당의 논리다.
판례에는 수사기관에서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범죄와 관련 있는 부분을 선별해서 추출하고 나머지는 ‘지체 없이’ 삭제·폐기하거나 반환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추후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검찰은 우려한다. 추출한 증거가 원본에서 나온 것인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될 경우 이미지 파일을 갖고 있어야 입증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 대신 다른 용도로는 이미지 파일에 접근할 수 없도록 봉인하는 등 대검 예규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재판에서 디지털 자료의 증거 능력을 둘러싼 공방이 드물지 않은 만큼 검찰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피압수자로서는 압수한 결과물을 별건 수사 등에 이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검찰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법조계에서는 제도를 개선하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방안이 수사가 끝난 뒤에는 이미지 파일을 법원이나 독립적인 제3의 기관에 보내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범죄와 무관한 전자정보 폐기를 의무화하도록 형사소송법에 명시하자는 의견도 있다.
법원에 이송·관리하도록 법 개정해야
이런 방안을 실현하려면 입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국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이번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검찰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했고, 총선 뒤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법률 개정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근본적 해법을 찾기보다 정치 이슈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비친다.
또 영장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압수수색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 방법일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이런 내용의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도입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을 추진했지만 검찰 등의 반대로 보류됐다. 대법원 규칙에 의해 국민을 심문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는 만큼 형사소송법에서 다루는 편이 깔끔할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압수수색 폭증의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법률 개정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압수수색은 개인의 내밀한 정보까지 강제로 들춰내는 거친 방식의 공권력 행사인 만큼 강력한 사전·사후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만 실체 규명을 어렵게 하거나 증거력을 훼손하는 방식이어선 안 되기 때문에 균형점을 찾기가 까다롭다. 이런 사안일수록 법의 잣대로 접근해 법률로 정리해야 한다. 정치적 공방의 영역으로 끌고 간다면 해법은 꼬이고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