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가 숱한 화제 속에 치러진 가운데 LA 다저스팀 선수단 아내 10명이 서울 시내에서 찍은 단체사진 한 장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저마다 연두색 쇼핑백을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쇼핑백에 새겨진 글씨는 ‘올리브영’. ‘K뷰티’의 핵심 메카 방문을 기념하는 소위 ‘성지순례’ 인증샷이었던 셈이다.
이 사진을 보니 오버랩되는 장면이 하나 떠올랐다. 2019년 10월,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화장품 편집매장 ‘세포라’의 한국 내 첫 매장 오픈을 앞두고 ‘오픈런’을 불사했던 국내 고객들의 쇼핑백 인증 사진이었다.
속도전에 실패한 ‘공룡 기업’의 성적표
이처럼 큰 기대를 모았던 세포라가 최근 “무거운 마음으로, 5월 6일부터 단계적으로 한국 사업을 철수한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이에 올리브영의 아성에 백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이 잇따라 흘러나왔다. CJ그룹 올리브영은 국내 헬스앤드뷰티(H&B) 편집숍 업계에서 독보적인 1위 업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40% 가까이 늘어난 3조8612억 원에 달한다. 한국 시장에서 두 업체의 희비가 갈린 이유는 뭘까. 올리브영에는 있고, 세포라엔 없었던 건 무엇이기에.
1970년 프랑스에서 설립됐으며 이후 루이뷔통모에에네시그룹(LVMH)이 인수한 세포라는 다양한 체험형 서비스 덕에 ‘혁신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캠퍼스 케넌플래글러 경영대학원의 연구진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불황에도 역경을 뚫고 성장한 기업의 대표 사례로 세포라를 꼽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명성이 높은 세포라가 국내 시장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 이유로 국내외 화장품, 유통업체 전문가들은 ‘속도’를 꼽았다. 오프라인 이벤트에 강한 세포라는 한국 진출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불운을 맞았다. 뜻밖의 돌발 변수 앞에서 ‘공룡 기업’의 대응은 더뎠다. 외연 확대, 새로운 서비스 도입 등에 지나치게 신중했다.
올리브영은 달랐다. 똑같이 맞이한 위기 상황에서 속도를 무기로 활용한 것이다. 비대면 쇼핑 상황에 맞춰 당일 3시간 내 배송을 약속한 ‘오늘드림’ 서비스를 확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임직원 평균 연령 만 30.3세로 CJ그룹 내에서도 가장 젊은 조직답게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춘 것도 옴니채널 전략을 신속히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
최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3월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체기를 겪었던 K뷰티의 경쟁력을 제대로 발산해야 할 골든타임이 왔다는 뜻이다. 전략 수립을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지향점은 ‘B(Brand), T(Technique), S(Speed)’로 압축됐다.
먼저 개별 브랜드들이 ‘K뷰티’란 카테고리 자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팬덤을 낳는 브랜드(Brand)를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인 특유의 감각과 손맛을 바탕으로 한 기술(Technique)도 강력한 경쟁력이다. 퍼스널 컬러 진단이나 헤어, 메이크업 시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에 주목해야 한다.
‘K뷰티’ 성공 전략, ‘B.T.S’에 주목해야
속도(Speed)의 미덕 역시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최근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한 것도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온라인 판매 및 홍보 방식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K뷰티는 ‘K컬처’를 구성하는 핵심 산업이기도 하다. 더욱 치열해진 세계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고 싶다면 ‘B.T.S’를 긴급 소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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