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논란, 여야 갈등 등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5월 말 경남 사천에 문을 여는 우주항공청의 첫 채용 평균 경쟁률이 16.1 대 1을 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은 우주항공청 일반임기제 공무원 경력경쟁 채용시험 접수 결과 50명 모집에 807명이 응시했다고 지난달 말 공개했다. 정주 여건이 열악해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 다른 결과가 나오자 정부는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우주항공청 인재 채용이 ‘흥행’했다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나 우주개발 분야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이번 모집은 5급과 6급, 7급 연구원 모집이다. 실제 우주개발이나 산업 생태계 구축 등 프로젝트를 이끌 간부급 핵심 인재와 해외인재 채용은 시작도 안 해 벌써 샴페인을 터뜨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주 여건과 채용 조건 등에서 여전히 리더급 연구원 인재 채용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처우나 채용 조건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간부급인 4급 연구원의 연봉은 1억1000만∼1억3000만 원으로 대기업 우주항공 분야 계열사와 유사한 수준이다. 경남 사천이라는 정주 여건을 감안하면 굳이 직장을 옮길 이유가 없다. 업무 성과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지만 ‘임기제’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처우나 채용 조건보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우주항공청 설립 이후가 암울하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우주항공청이라는 정부 조직을 별도로 만들긴 하지만 ‘무엇’을 ‘왜’ 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수 인재가 열악한 정주 여건과 처우를 감내하면서까지 우주항공청에서 성취하고 싶은 도전적인 미션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번 정부에서 2032년 달 착륙선 발사, 2045년 화성 탐사라는 선언적인 비전이 제시되긴 했다. 하지만 선언적인 비전만 존재할 뿐 우주개발 후발주자인 한국이 ‘무엇을 위해’ 거대 미션을 달성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예를 들어 달 착륙선 발사를 통해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닌 통신 기술을 확장하고 심우주 통신 기술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한다거나, 달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 자원 개발 기술을 갖춰 자원을 선점하겠다는 등 연구자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미션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우주개발 후발주자인 룩셈부르크는 2018년 룩셈부르크우주국(LSA)을 설립하고 우주 소행성에서 희귀 광물을 얻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14년 화성 탐사선 ‘아말’ 개발에 착수한 지 6년 만인 2020년 발사에 성공했다. 화성 탐사선 개발로 기계공학, 전기공학, 컴퓨터공학 인력을 양성해 석유에 의존한 경제구조를 탈바꿈하려는 구체적인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
우주항공청 설립 이후 차분히 풀어나가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우주항공청이 어떤 분야에 집중할지 청사진을 보여야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 그래야 목적에 맞는 조직과 기능, 체계도 만들 수 있다.
3일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이 “전문가위원회를 별도로 만들어 우주항공청 비전과 핵심 임무를 검토 중이며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5월 27일 개청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