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을 때만 가격이 오르는 자산에 투자하는 건 괴상한 짓이다.” 작년 11월 99세로 타계한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2011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회사 주주총회에서 금 투자에 관한 의견을 묻는 주주에게 이렇게 답했다. 수십 년간 워런 버핏 회장의 조언자이자 파트너였던 멍거 부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투자자의 자세를 잃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사상 처음 트로이온스(31.1g)당 2300달러 선을 뛰어넘은 요즘 금값을 본다면 뭐라고 조언할까.
▷3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가 2315달러를 찍었다. 지난달 4일 2100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한 달 만에 10% 상승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최근 “올해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섣부른 금리 인하 기대를 경계했는데, 시장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표현보다 ‘인하’에 주목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떨어지면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의 대체 안전자산인 금은 가격이 오른다.
▷금값 급등에 미중 패권전쟁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몇 년 새 지속적으로 미국 국채를 팔고 금을 사들이고 있다. 작년 말 현재 보유한 금이 2235.3t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제재로 러시아 자산거래가 동결되는 걸 지켜본 중국이 언젠가 닥칠 미국과의 정면충돌에 대비해 금 보유를 늘린다는 거다. 최근엔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자 1g짜리 ‘금콩’에 투자하는 중국 청년들까지 늘었다고 한다.
▷미국의 재정적자 폭증에 대한 우려도 금값을 자극하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작년 말 97%였던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2029년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역대 최대치였던 116%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30년 뒤엔 16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대전 때 진 빚은 호황과 인구 증가에 힘입어 갚았지만, 지금 늘어나는 빚은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감당하기 대단히 어렵다. 결국 달러를 더 찍어 내는 수밖에 없어 금의 가치가 오를 거란 전망이다.
▷국내 금값도 천정부지다. g당 10만 원을 돌파했고, 세공비 포함 한 돈(3.75g)짜리 돌반지는 45만 원을 넘었다. 그제 한꺼번에 몰린 투자자들로 인해 한국 금거래소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까지 있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올해 말 트로이온스당 2500달러, 씨티그룹은 12∼18개월 내에 3000달러까지 금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 세계의 큰손들은 세상이 더 불안정하고, 어지러워지는 쪽으로 강하게 베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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