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2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면제하는 등 기존 안에서 여러 인센티브가 추가됐다. 시장에서는 상속세 개편부터 해야 한다, 주주 배당을 높여야 한다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벗어나기 위한 여러 대안이 나온다. 하지만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이사회부터 ‘밸류업’ 하는 것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은 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를 올릴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4단계를 거친다. 기업가치의 현황을 진단하고, 목표 수준과 도달 시점을 설정하며, 이를 위한 경영 전략을 수립해 달성 여부를 평가하고 소통한다. 여기서 출발점은 기업이 자사의 가치가 적정 수준인지부터 따져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보다 작거나 자본수익률이 자본비용, 즉 투자자의 기대수익률보다 낮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경우 회사가 처한 상황과 전략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주 환원 확대, 사업 개편, 비(非)영업용자산 매각 등을 포함해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을 이끌 주체이자 컨트롤타워가 바로 이사회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한 경영진의 몫이고, 이사회는 적절한 질문과 코칭을 통해 모든 과정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전략을 택할지 경영진과의 논의를 거쳐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도 이사회가 해야 한다. 이번 프로그램에도 이사회를 ‘기업 경영 관리의 최고 결정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선 기업가치를 평가할 만한 ‘재무 이해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2명만 회계·재무 전문가인 반면에 미국에서는 새로 선임된 이사의 61%가 재무 이해력이 필수인 경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그룹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미국 주요 기업의 이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사회에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재무 전문성을 꼽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상법상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계열사 간 불공정 합병, 물적 분할 후 이중 상장 등으로 인해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위험을 예방하거나 구제할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각적이고 충분한 합의가 필요한 법제화 논의와는 별개로, 이사회는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가 적절한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전제 요건으로서 주주 권익의 보호 장치를 갖췄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이사회는 ‘거수기’ ‘셀프 연임’ 등으로 불리며 기업의 감독자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제 이사회 역할에 대한 눈높이가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함께 국내 기업의 이사회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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