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와 IS[임용한의 전쟁사]〈310〉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8일 23시 21분


과거의 테러리스트들은 어떻게 해서든 방송 카메라에 얼굴을 내밀고, 세계인들에게 자신의 조건이나 목소리를 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이 점이 은행 강도나 폭력조직의 테러와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도 이런 태도로 자신들은 범죄자와는 다른 혁명 투사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근래의 충격적인 테러, 9·11사건, 하마스와 이슬람국가(IS)의 모스크바 테러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은밀하게 접근해 신속하고 가혹하게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살상극을 벌이고 도주한다. 은행 강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변화의 첫 번째 이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다. 굳이 방송국 촬영팀을 부르지 않아도, 지금 이 장면, 이 발언을 찍고 있느냐고 확인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촬영되고 신속하게 세계로 송신된다.

두 번째, 팔레스타인 문제, 특정 지역의 종교 탄압, 소수민족 탄압 같은 세계적인 이슈의 원인과 해석, 정답이 이미 잘 포장되어 세상에 퍼져 있다. 굳이 테러리스트가 저격수의 총구를 피해 가며 창문에서 소리 높여 떠들 필요가 없어졌다.

극단적인 문제일수록 정답은 찾기 어렵다. 마치 12가지 합병증 환자처럼 고민하고 타협하고 갈등하며 섬세하게 해결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테러리즘이 의존하는 이 냉동 포장 상자에는 분노와 감정적 호소와 극단적 대안이 있을 뿐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현상이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하나의 사건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대다수 사람이 사고를 포기하고 선명하게 포장된 해법에 의존한다. 여기서 진영논리가 발생하고, 벽이 발생했다. 과거에는 테러리즘도 충격과 공포라는 방법을 통해 상대를 설득해 보자는 생각이라도 있었다. 이제는 이들도 설득을 포기한다.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없다. 메시지와 답은 이미 던져져 있다는 가정하에서 저승사자처럼 피를 뿌리고 정의의 심판자 행세를 한다. 이는 테러리스트만의 죄가 아니다.

#테러리스트#소셜네트워크서비스#테러리즘#포장된 해법#정의의 심판자 행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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