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은]영화 부담금 없앤다는데… 티켓값 인하 얘기는 왜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9일 23시 42분


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500원요? 요즘 아이맥스 영화관 티켓값은 2만 원이 넘어요. 영화 입장권 부담금 500원 폐지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소액이라 별로 안 고마운데?’ ‘없애나 마나 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대학 시절 영화동아리 선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고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영화 관람료에 징수하던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담금’(티켓값 3%·이하 부담금)을 폐지하기로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현재 영화 티켓값은 일반관 기준 평일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 특수관 평일 기준 2만5000원 선이다. 부담금은 티켓값의 3%이다 보니 약 500원에 그친다. 정부는 영화 관람객들에게 부담금 폐지에 따른 ‘민생 회복’을 노렸지만, 500원은 워낙 소액인 탓에 그 효과가 크게 와닿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부담금 폐지가 영화관 티켓값 인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부담금을 폐지하려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법이 개정돼 부담금 폐지를 한다 해도 멀티플렉스 등 각 극장들이 티켓값을 인하해야 할 의무는 없다. 현재 영화 티켓값에 포함된 부담금은 극장과 제작사가 1.5%씩 나눠 영화진흥위원회에 납부해 왔다. 한 멀티플렉스 극장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누적된 극장가의 적자가 워낙 크다. 극장가도 나름대로 수익성 개선 등의 측면에서 고민이 있다 보니 부담금 폐지로 영화 티켓값 인하가 바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극장들이 티켓값을 낮추지 않으면 부담금이 폐지되더라도 관객들에게 돌아오는 실질적 할인 혜택은 없는 셈이다.

반면 영화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부담금은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하는 영화발전기금 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 2007년 스크린쿼터 축소 대책의 일환으로 조성된 영화발전기금은 17년간 각종 영화제, 독립·예술 영화 제작 지원, 한국영화 해외 진출 지원 등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쓰였다. 이 때문에 영화계에선 부과금 폐지가 영화발전기금 축소로 이어져 영화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영화발전기금 사업 예산은 467억 원으로 전년 729억 원 대비 36%나 줄어든 상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배우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20개 영화 단체는 최근 정부의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에 반대하며 ‘영화산업위기극복영화인연대’를 발족했다. 이들은 이달 4일 성명을 내고 “영화발전기금 운용 로드맵을 제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영화발전기금의 유일한 재원이었던 부담금의 일방적 폐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정부는 부담금 폐지에 따른 영화발전기금 부족분을 국고로 충당한다는 입장이다. ‘그림자 조세’로 거두던 부담금을 없애는 대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영화발전기금 부족분을 메워 나간다는 이야기다. A에서 거두든, B에서 거두든 결국 재정 출처는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 아닌가. 그렇다 보니 국민도, 영화업계도 누구도 반기지 않는 정책이 돼 버렸다. 국민의 세금으로 일궈가며 부담금 폐지란 이름으로 정부만 ‘민생 회복’ 생색을 낸 꼴이다.

#영화#부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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