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월 대선 유세 중 한 말이다. 자신이 이번 대선에서 이기는 것은 신(神)의 뜻이며 그래야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을 믿지 않는 반대파를 응징할 수 있다고 외친다.
종교와 거리가 먼 삶을 산 그가 신을 거론하는 것은 모순적이나 이런 행보가 그만큼 미 보수 유권자에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도 된다. 그의 핵심 지지층인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그를 ‘메시아’로 여긴다. 신이 구원을 위해 트럼프를 보냈다는 말을 듣노라면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지금이 영국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온 17세기인지 2024년인지 헷갈린다.
세계 곳곳에서 이처럼 종교를 앞세운 정치인이 득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 자유주의 못지않게 현대 사회의 근간으로 꼽히는 ‘정교분리’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
19일부터 6주간 치러질 총선에서 3선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의 지도자가 아니라 힌두교 제사장처럼 보인다. 그는 최근 이슬람 사원 터에 건립된 힌두교 사원의 봉헌식을 주재했다.
모디 정권은 무슬림 남성과 힌두교 여성의 결혼 금지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여성이 결혼 후 남편의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무슬림계 난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법도 강행했다.
나라 이름도 바꿀 태세다. 영국 식민지배 시절 도입된 ‘인디아’ 명칭을 버리고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인도를 뜻하는 ‘바라트’를 쓰겠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이미 일부 공문서에도 ‘바라트’를 썼다. 다종교 다인종 다문화 국가라는 인도의 역사와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처사다.
이 분야의 ‘원조’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 1923년 건국부터 확립된 정교분리 원칙을 2003년 집권 이후 깡그리 무너뜨렸다. 동로마 제국의 유산 ‘아야소피아’ 대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꿨고 여성의 히잡 착용, 주류 판매 규제 등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도 속속 도입했다. 나라 이름 역시 바꿨다. 지난달 지방선거 참패로 타격을 입은 그가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를 통해 지도력을 회복하려고 신정일치 국가로의 전환까지 추진할지 모를 일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집권 내내 인구의 13.5%인 초정통파 유대교도 ‘하레디’에 끌려다닌다. 직업도 없고 세금도 안 내면서 정부 보조금에 기대 유대교 경전 ‘토라’만 읽는 집단이다.
이스라엘은 유대계 정체성 보존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하레디의 병역을 1948년 건국 때부터 면제했다. 지금은 사회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병력 부족 또한 심각하다. 그런데도 네타냐후 총리는 이들에게 병역을 강요하지 못한다. 집권 기반인 극우 세력과 척을 질까 두려워서다.
종교를 앞세우는 세력의 상당수는 범죄 앞에서도 당당하다. 불법을 저지른 후 “억울하게 희생됐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4건의 형사 기소와 여러 민사 소송에 직면한 트럼프 전 대통령, 뇌물수수 등으로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모두 “죄가 없는데 정치적 이유로 법정에 섰다”고 주장한다. 이런 ‘희생양 호소인’이 많아질수록 법치주의는 길을 잃는다.
이들의 지지자 또한 다를 것이 없다. 지지하는 정치인은 맹목적으로 떠받들고 그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이단과 악(惡)으로 치부한다. 정치인과 국민의 관계가 ‘교주’와 ‘신도’로 변하는 순간이다. 전 세계 76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에 ‘정치의 종교화(religionization of politics)’가 두드러진다는 점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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