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워싱턴의 대표적인 친중 유화파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이롭게 한다고 믿는다.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 시절 그는 중국에 손을 내밀어 훗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중국을 글로벌 무대로 불러내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여 서방에 동화되고, 미국은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자 후생(厚生)이 증가할 것이란 계산이었다. 그의 전략은 일부 현실이 됐다. 미국의 의도대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자, 글로벌 경제는 중국의 저가 상품 덕분에 고성장-저물가의 호황을 누렸다.
세계 경제 위협하는 中의 과잉생산
이들의 공생은 영원하지 못했다. 중국의 시장 잠식으로 제조업 기반이 흔들린 미국에서는 세계화가 한창이던 10여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파국의 도화선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미국이 비틀거리는 사이 중국은 고부가산업 발전의 사다리를 타며 태평양 건너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위협했다. 그런 위기의식에 탄생한 트럼프 정권은 드높은 관세 장벽을 치며 중국산 제품에 빗장을 걸었고, 뒤이은 바이든 행정부도 대중 압박에 온 힘을 다했다. 옐런 장관은 이번 방중에서 “중국이 과잉 생산을 억제해야 한다. 미국의 신산업이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중국을 세계화로 이끌며 전 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의 홍수를 일으킨 장본인이 한 말이라고는 믿기가 힘들다.
요즘 ‘알·테·쉬’로 상징되는 초저가 중국산의 공습은 20년 전과 섬뜩한 데자뷔를 이룬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상품을 헐값에 해외로 쏟아내다시피 하고 있다. 한국이 ‘디플레 수출’의 전초기지로 활용된다는 점도 당시와 비슷하다. 하지만 따져 보면 지금의 양상은 이전과는 차이점이 오히려 더 많다. 우선 원인부터 다르다. 과거엔 ‘은둔의 나라’ 중국의 글로벌 무대 데뷔로 저가 제품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에 쏟아졌지만, 지금은 내수 시장과 부동산 침체로 자국에서 안 팔리는 재고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성격이 짙다. 중국의 불황은 우리가 싸구려 중국산의 공습에 대응해 우리 제품을 중국에 내다 팔 여지가 적다는 걸 뜻한다. 실제로 작년 대중 수출이 급감하면서 한국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 중국에 무역적자를 냈다.
중국의 산업구조도 변했다. 2000년대 초반엔 주로 저숙련·경공업 기반의 중국산이 세상에 풀렸다면, 지금은 전기차 배터리 석유화학 등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주요 산업에서 초저가 제품이 범람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지니 ‘2차 차이나 쇼크’의 충격도 배가될 수밖에 없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면 당장 해당 국가의 소비자들은 물가가 낮아져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 경쟁에서 밀린 자국 기업의 실적이 추락하고 일자리 감소와 내수 침체, 산업 기반 붕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런 뼈아픈 경험이 있는 미국은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며 중국 상품에 대한 고강도 견제에 나설 채비다.
값싼 중국산의 홍수, 더는 축복 아냐
주요국의 철벽 방어막에 판로가 막힌 중국은 먹잇감을 다른 주변국에서 찾고 있다. 요즘 한국이 그 타깃이다. 알리나 테무 앱에서는 2000원짜리 무선 이어폰, 5000원짜리 원피스 등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우리를 현혹하지만, 개중에는 품질도 형편없고 발암물질만 듬뿍 함유된 엉터리 제품들이 무더기로 포함돼 있다. 한때 우리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중국은 이제 이웃나라의 산업 생태계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나라로 돌변했다. 값싼 중국산의 홍수에 기업도 정부도 소비자도 바짝 긴장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