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바꾸고 싶다는 분노 분출 선거
“아니다” 말 못했던 참모진이 간신이다
DJ는 총선 패배 딛고 정권 재창출 성공
비서실장부터 대통령실 전면 개편하라
제목에 꽂힌 독자들은 말할지 모른다. 아니, 우린 대통령을 바꾸고 싶은 것이라고. 그럴 방도가 없어 촛불 혹은 짱돌을 들 듯 분노 투표, 시위 투표, 응징 투표를 한 것이라고.
누가 뭐래도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다. 내각제 같으면 총리를 쫓아내고 정권을 갈아 치우는 야당 승리다. 국민의힘이야 참패가 슬프다고 해도 여전히, 엄연히 집권당이다. 지금까지와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당 대표 쫓아내라면 쫓아내고, 내부 총질 없이 대통령의 ‘체리 따봉’에 감읍하면 그만이다.
물론 야권은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오만한 대통령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듯 오만한 야권도 결국은 심판받는다.
2000년 4·13총선이 그랬다. 소수파 정권이었던 김대중(DJ) 대통령은 신년 초 ‘대통령당’인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며 “정치가 국정의 발목을 잡는 사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거대 야당의 횡포를 비판했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에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집권당은 고작 115석이었다. 한나라당(현 국힘)은 DJ 정권 심판론으로 133석을 차지해 제1당을 지켰지만 ‘제왕적 총재’ 이회창은 3년 후 대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꿈은 정권 재창출”이라고 DJ는 회고록에 썼다. 윤 대통령에게도 3년의 시간이 있다. 대통령만 빼고 다 바꾼다면, 총선 패배를 딛고 그래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킨 대통령으로 정권 재창출에 기여할 기회는 살아있다.
패배 나흘 뒤 DJ는 담화문을 통해 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제의했고 실제로 만나 상생 정치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암만 담화문을 내고 지금껏 안 만났던 야당 대표와 회담을 한대도 윤 대통령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국민 신뢰만 잃을 수 있다.
작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이 끝나고도 그랬다.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고 말했다지만 바뀐 건 없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개각 인사 천거를 요청받은 한 인사는 자신이 건넨 괜찮은 명단이 참모진의 평판조회를 거치면서 괜찮지 않게 돼버리더라고 한탄을 했다. 결국 비서실 찔끔 개편과 총선용 개각에 그쳐 마침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구청장 하나 바꾸는 ‘쪼만한 선거’일 뿐 정권 중간평가는 아니라고, 대통령에게 ‘내 귀에 캔디’ 같은 소리나 했던 그들이 간신이다. 대통령이 국힘 대표들을 갈아 치울 때 “그건 아니다” 한마디 못 하고 북 치고 장구 친 그들이 간신이다. 학예회 같은 민생토론회나 연출했던 참모진과 내각은 물론이고 ‘입틀막’에 이어 ‘파틀막’ 사태까지 번지게 만든 경호처에도 간신이 수두룩하다.
이들 무능한 간신들은 곧 분출할 대통령실-내각 개편 요구에 대해서도 몇 달 전 단행한 걸 또 할 필요 있느냐며 제 한 몸 보존에 급급할 것이다. 당이 문제이지 대통령은 잘못 없다며 심기 경호에만 골몰하는 간신이 들끓지 않고서야 2년 전 ‘공정과 상식’을 들고나와 “무도한 문재인 정권 교체”를 외쳤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은 어디 갔는지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그때의 윤석열은 지금, 없다. 지긋지긋한 내로남불 박살낼 줄 알았는데 부인과 동창, 검찰 특수통 등 내 식구에게는 박절하지 못하면서 내 식구 아니면 잠재적 피의자로 아는 검찰주의자 윤석열만 보일 뿐이다. 조국혁신당이라는 유아적 당명을 짓고 대표직에 오른 조국이 돌풍을 일으킨 것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당신들은 떳떳한가’ 싶은 배신감 때문이었다.
이대로 3년을 갈 순 없다. 대통령을 갈아 치울 수 없으니 대통령 빼고 다 바꾸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 정무감각이 꽝이니 정치 경험 많은 비서실장을 들이라는 것이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며 부인만 감쌀 게 아니라 진짜 게이트 생기기 전에 제2부속실을 설치하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뒤에도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았던 충암고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제라도 경질하라는 것이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뚜벅뚜벅 가겠다고 오기즉생(傲氣則生)할 때가 아니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이고 사즉생(死則生)하는 모습을 안 보이면 나라가 망할 것 같아 불안하고 불길한 것이다.
살아생전 김수환 추기경은 2000년 월간지 신년호에서 DJ에게 남은 임기 3년간 당적을 떠나 온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펴줄 것을 건의한 바 있다고 했다. 우리 곁에 큰 어른이 있다면 분명 같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변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악착같은 야권 공격에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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