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상대 이해하려면 조급함 피해야… 소통 중요성, 푸바오에게 배웠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1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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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
첫 자연번식 판다, 자식처럼 3년 키워
모친상에도 중국 동행해 적응 도와
판다 성장기 통해 치유받은 이 많아… 배려와 소통, 동물 키우며 자주 깨달아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국내 첫 자연번식 판다 ‘푸바오’와 사육사 강철원 씨가 판다 방사장 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강 씨는 마음 기댈 곳이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순수한 판다의 성장기를 통해 치유를 얻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에버랜드 제공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국내 첫 자연번식 판다 ‘푸바오’와 사육사 강철원 씨가 판다 방사장 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강 씨는 마음 기댈 곳이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순수한 판다의 성장기를 통해 치유를 얻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에버랜드 제공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福寶)’를 실은 화물기가 3일 중국 청두 솽류(雙流)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는 순간, 조수석에 있던 사육사 강철원 씨(55·사진)는 불안감에 발을 굴렀다. 예민한 판다는 비행기 이동, 특히 이착륙 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착륙 후 강 씨는 즉시 비행기 내 푸바오 상태부터 점검했다. 걱정 어린 그의 눈빛을 읽어서일까. 푸바오는 강 씨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푸바오가 너무 밝은 표정으로 의젓하게 앉아서 대나무를 먹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저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았습니다. ‘할아버지, 봤지? 나 잘할 수 있다고 했잖아. 걱정하지 마’라고.”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뜻의 푸바오는 2020년 7월 20일 태어난 국내 첫 자연번식 판다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사육되며 국민적 인기를 끌었지만, 이달 3일 태어난 지 1354일 만에 중국으로 떠났다. 에버랜드에는 푸바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6000여 명이 몰렸다. 푸바오 신드롬과 함께 37년 차 베테랑 사육사인 강 씨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는 2016년 푸바오 부모인 러바오와 아이바오를 사육해 ‘판다 아빠’로 불렸다. 푸바오를 키우면서 ‘푸바오 할부지(할아버지)’란 별명도 얻었다.

강 씨는 푸바오 이송을 위해 3, 4일 중국을 방문한 뒤 5일 귀국했다. 10, 11일 서면과 전화 등을 통해 그를 인터뷰했다. 돌아가신 강 씨의 어머니 이야기부터 조심스레 꺼냈다. 지병을 앓던 그의 어머니는 푸바오 이송 하루 전인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강 씨가 모친상의 슬픔 속에서도 푸바오 동행에 나서자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아무리 중요해도 동물인데, 모친상은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일부 있었다.

“사실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어머니를 뵈러 병원에 갔었어요. ‘중국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했더니, 어머니가 ‘(푸바오와 헤어져) 많이 섭섭하지. 잘 다녀와라’라고 응원해주시더군요. 그런데, 2일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형님들, 누님들이 ‘어머니는 너가 푸바오와 함께 중국에 가길 원하셨고, 그런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고 격려해주셨어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푸바오를 화물기로 이송하기 위해선 각종 서류를 중국에 제출하고 복잡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강 씨 대신 다른 사육사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푸바오 소유권은 중국이 가지고 있다.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CITES)에 따라 짝짓기를 하는 만 4세가 되기 전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강 씨는 “3일 공항 도착 후 푸바오는 중국 환경부 소속 판다총괄 부서의 선수핑 기지까지 차량으로 옮겨졌다. 이후 바로 검역장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강 씨가 푸바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건 4일. 그는 당초 검역장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중국 당국을 설득했다. “‘모친상에도 푸바오를 위해 동행했다’며 설득했어요. 방역복을 입은 채 푸바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입던 사육사 복장이 아니라, 하얀색 방역복을 입고 눈만 드러내니 푸바오가 못 알아봤어요. 몇 번 부르니 제 목소리를 알아채고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푸바오가 좋아하는 안마를 해줬어요.”

현재 심경을 묻자 그는 “감정 조절이 잘 안된다”고 했다. “아쉽고, 서글퍼요. 푸바오가 사라진 방사장으로 들어갈 때 허전함을 지울 수 없더군요. 불을 켜면 항상 푸바오가 먼저 보고 인사를 했는데….” 그럼에도 푸바오 동생인 쌍둥이 판다 ‘후이바오’와 ‘루이바오’를 돌보기 위해 강 씨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는 “그 아이들이 저를 보는 눈빛에서 예전의 어린 푸바오가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6, 7월쯤 푸바오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다시 만났을 땐 푸바오가 알은체해주면 좋겠다”며 웃었다.

강 씨와 푸바오의 인연이 시작된 건 2016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 차원에서 판다 이송을 결정했고, 2016년 러바오와 아이바오가 한국에 왔다. 4년 뒤인 2020년 7월 자연분만에 성공해 푸바오가 태어났다. 당시의 기억은 그에게 지나칠 정도로 선명했다.

“2020년 7월 20일. 오후 9시 49분. 몸무게는 197g, 몸길이 16.5cm. ‘으앙’ 하며 처음으로 푸바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사육사 경험을 모두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이 같은 ‘푸바오 바라기’는 강 씨뿐만이 아니다. 2021년 1월 첫 공개 이래 약 600만 명이 푸바오를 찾았다. 판매된 굿즈만 330만 개. ‘매 성장의 순간에 푸바오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배웠다’며 치유받았다는 사람이 특히 많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켰다. 국내 동물 학대 발생 건수는 2016년 303건에서 2020년 992건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곰 한 마리에 ‘왜 이렇게 난리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요. 푸바오가 태어난 때가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던 시기였잖아요. 2020년 코로나19 유행 때 푸바오를 보면서 가족애를 느끼고 힐링이 되신 거 같아요. 함께 응원하고, 함께 육아하고, 그런 느낌들.” 이어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남기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심어준다면, 역사 속 어느 위인 못지않게 인정받을 대상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한다”고 했다.

강 씨는 1969년 전북 순창 산골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눈망울이 큰 소가 친구 같아 등에 타곤 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토끼를 잡아왔는데, 몰래 풀어줘 크게 혼이 났다고 한다. 그는 “이후 아버지가 사냥에 나가지 않으셨다”며 “아들이 동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에버랜드 입사 2년 차에 국내 최초로 맹수(인도표범) 인공포육에 성공했다. 강 씨는 사육사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멘토로 영국 환경운동가이자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을 꼽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제인 구달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내가 한 일은 동물을 따라다니며 기록한 것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동물 관찰기록표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사육관리를 더욱 치밀하게 하는 방법을 조언했어요.”

강 씨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동물 우리 옆에 야전침대를 놓고 잤다. 유인원과 교감하기 위해 덥수룩한 수염까지 길렀다. 사육사로 37년간 일하며 80여 종의 동물을 돌봤다. 동물에게 모든 것을 쏟아내는 강 씨가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대할지가 궁금했다. 푸바오에게 자필 편지를 써 공개하던 그가 가족에게는 편지를 쓸까. 강 씨는 “아내와 대학교 3, 4학년 두 딸이 있다”며 “아내와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는 편”이라고 했다. “딸들도 사육사인 아빠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줘 늘 감사해요. 다만 최근 두 딸이 제 카카오톡 프로필이 푸바오로 된 걸 보고 자기들 사진으로 바꾸더군요(웃음).”

자녀 이야기를 하던 강 씨는 ‘동물에게 배울 게 정말 많다’고 강조했다. 푸바오 엄마 아이바오는 자식을 나무 위에 무작정 올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푸바오가 스스로 터득하도록 도와준다.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도 동물을 다루며 배웠습니다. 동물 이름을 부를 때 기분 좋은 표현이나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밝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사랑해주면 동물은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긍정적으로 반응하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좋은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은 긍정적으로 됩니다.”

강 씨가 푸바오와 교감하는 모습에서 종(種)을 뛰어넘는 유대, 나아가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다는 이들도 많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는 확증편향, ‘나와 다르면 분노하는 증오사회 탓에 인간 사이의 소통이 동물과의 교감보다 어려워졌다는 방증 아닐까.

“동물을 만날 때 ‘예쁘다’며 빨리 친해지고 싶어합니다. 빨리 만져보고 싶어하고요. 동물에게는 실례예요. 서로 이해해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한 번 만나서 친구하고, 빨리 친해질까요?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소통하면 어떨까요.”



#푸바오#할부지#강철원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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