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의료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의 면허를 다 정지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그래야 의사들이 정신 차린다는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 직전인 이달 초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담화 초안은 공개된 담화보다 의사들에 대한 훨씬 더 강경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참모들이 대화 가능성을 더 열어둬야 한다고 설득해 그나마 발표된 담화로 정리됐다. 하지만 그 담화마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됐다. 담화가 나온 뒤 참모들은 내용이 어떻게 읽힐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불통은 최고 권력 취한 오만에서 온다
국정 운영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윤 대통령은 뚝심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민심은 이를 불통이라고 읽었다.
불통은 최고 권력에 취한 오만에서 온다. 휴브리스(Hubris). 권력자의 오만을 가리키는 이 말이 대통령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가른다. 권력자의 추락 여부를 결정하는 그 오만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공교롭게도 이번 총선 민심이 선택한 윤 대통령 심판은 조국혁신당 돌풍과 함께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 윤석열의 이미지는 공정과 상식, 불의에 저항하는 뚝심이었다. 정권의 반대, 공격에도 굽히지 않고 원칙대로 조국 수사를 지휘한 리더십이 그에 대한 지지를 높였다.
책 ‘위기의 대통령’(함성득)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19년 9월 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 윤 총장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문제를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그럼 조국이 위선자입니까?”라고 물었다. 윤 총장은 “저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한 뒤 “조국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윤 총장은 “법리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 뚝심이자 원칙일 것이다. 당시 여권이 윤석열을 공격하면 할수록 윤석열의 존재감은 커졌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정치학자는 “지금은 공정과 상식, 원칙 같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보여줬던 리더십이 안 보인다”고 했다. 오히려 그 좋은 자질이 고집과 불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역사가 거꾸로 반복되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조국 대표는 그런 상황을 십분 이용했다. 자신을 윤 대통령의 정치적 희생자이자 순교자로 규정하고 정권 심판을 윤 대통령 업보로 부각했다.
왜 그런 전략이 먹혔나. 부인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분명한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 눈높이에선 조국을 수사한 검찰총장 윤석열의 공정, 상식과 반대였다. 민심은 5년 전 조 대표에게 ‘내로남불’을 물었고, 이제 윤 대통령에게 ‘내로남불’을 물은 것이다.
검사 마인드 버리고 국민에 고개 숙여야
대통령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되니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읽지 못한다. 뚝심이 고집으로 변하는 건 여기서 나오는 최고 권력자의 오만 때문이다. 많은 권력자들이 이 때문에 추락했다. 윤 대통령의 휴브리스는 김 여사, 이종섭,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 곳곳에서 드러났다. 국민에게 진정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태도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 많은 이들이 윤 대통령에게서 그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범죄자 때려잡는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대통령 윤석열로 마인드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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