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롤모델 언니들… 일터에서 어디로 갔을까[2030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4일 23시 27분


멋진 언니들을 롤 모델로 꿈을 키워왔다. 첫 롤 모델은 고등학교 학생회장 언니였다. 훤칠한 키에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학생회장까지 하는 하이틴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기캐’였다. 두 번째 롤 모델은 첫 직장 선배였다. 타고난 패션 센스에 뭘 걸쳐도 태가 났고, 업무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출중했다. 한 상사로부터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부터 경력 관리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 기본기의 팔 할을 배웠다. 사무실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했던 그였지만 퇴근 후에는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고민을 들어주는 언니이기도 했다. 그 뒤로도 언니들은 내게 영감과 자극이 되었고, 크고 작은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기도 했다.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그런데 연차가 차면서부터 점점 언니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한들 ‘일하는 엄마’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지역 특성별로 편차는 있지만 놀이터에서, 교실에서, 여전히 손꼽히는 수준인 게 현실이다. 자발적 선택도 있지만, 버티고 버티다 갈림길에 서는 경우도 있다. ‘아이에게 집중하는 게 좋을까?’ 물론 육아휴직 등을 거치면서 등 떠밀리듯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그 결정이 자의든 타의든 ‘팩트’는 우리나라 100대 기업 임원 7345명 중 여성은 439명으로 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유니코써치, ‘2023년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 현황’). 그리고 회사에서 이 나이 즈음이면 그 말이 곧 언니가 없다는 말이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회에서 가끔이나마 ‘발견’하는 언니들은 비혼이거나 ‘딩크(Double Income No Kids)’인 경우가 많다. 기혼이고 언젠가는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도 갖고 싶은 나로서는 뭐랄까, 선례를 찾고 싶은 거다. 그러니 어쩌다 아이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혼자 반가운 마음에 의자를 당겨 앉는다. “진짜요? 자녀가 있으세요? 그럼 혹시 아이는 어떻게 키우세요?” 사례 연구를 하는 마음으로. 물론 조부모 중 한 분 이상이 전담으로 봐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더러 남편과 온전히 둘의 힘(물론 경제력이 포함된다)으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을 보면 안도한다. 소거되지 않은 가능성에 희망을 얻는다.

그들이 해주는 조언은 상통하는 데가 있다. 유독 엄마에게 과중하게 부여되는 ‘죄책감’과의 싸움에서 일정 부분 무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그중 뇌리에 남은 조언이 있어 옮겨본다. “어릴 때 상처 하나 없이 크는 아이가 있나요. 우리 애한테는 아침마다 자기를 떼어 놓고 출근하는 부모가 상처였겠지. 그런데 그만큼 다른 부분에서 채워줄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다 커서 일하는 엄마 모습이 그렇게 멋있다네.”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고, 가치관은 계속 변화한다. 그 무엇도 지금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변치 않을 분명한 바람이 있다면 보다 다양한 곳에서, 보다 다양한 언니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퇴근 후 떡볶이를 나눠 먹던 그 언니들이 오래도록 어디에든 남아 꿈꿔 주시기를, 나는 나의 꿈만큼이나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곳이 어디이든, 눈물 아닌 기쁨으로 선택한 곳이기를.
#롤모델#언니들#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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