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 온 지 한 달이 더 지났는데 일곱 살 큰딸은 이전 동네에 살던 친구가 준 구멍 난 청바지와 분홍 니트만 찾는다. 옷장에 널린 옷을 마다하고 굳이 그걸 입겠다고 떼 쓴다. 그러곤 놀다가 아무렇지 않은듯 묻는다. “유주는 잘 지낼까?” 일곱 살이 헤어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사 전 살던 동네는 집 뒤에 산이, 앞에는 작은 천이 흘렀다. 봄이면 천을 따라 벚꽃이 피었고, 산책 나온 어르신들은 어린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빙그레 웃으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두 딸이 다니는 집 앞 어린이집에 원생이 계속 줄었다. 친구가 떠나며 돌렸다는 양말, 학용품 같은 작별 선물을 들고 오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두 반이 하나로 합쳐졌다. 아이가 줄어든 여파로 해고된 교사는 계약직 신분으로 바뀌어 계속 아이들을 돌봤다. 놀이터에서 매일 보던 친구들이 줄었다.
떠나는 아이들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을 1, 2년 앞둔 연령대였다. 굳이 사정을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부모들은 비슷한 고민 끝에 비슷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더 좋은 동네로 가야 한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는 국가적 문제지만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다. 본보는 지난해 10년 치 서울 및 경기 지역 학생 인구 이동을 분석했다. 2013∼2017년과 2018∼2022년을 비교했을 때 초등생 순유입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강남구, 경기 김포시, 서울 양천구, 경기 화성시, 서울 서초구에서 화성, 강남, 김포, 경기 시흥시와 하남시 순으로 바뀌었다. 서울에서도 2013∼2022년 사이 강북, 관악, 광진, 노원, 도봉 등 13개 구는 새로 문 연 초중고교가 없었다. 반면 강동구는 초교 5곳과 중학교 2곳, 송파구는 초교 4곳과 중학교 3곳이 생겼다. 주로 아파트 새 단지나 기업이 들어선 곳과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 아이들이 쏠렸다. 그렇지 않은 곳에선 학교가 문을 닫았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교통사고 걱정 없이 안전하게 걸어다닐 통학로, 원하면 보낼 수 있는 동네 학원 한두 개, 휴일에 갈 동네 도서관과 공원, 퇴근 뒤 아이에게 돌아가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교통편.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동네 상당수는 수억 원의 빚을 져야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다.
앞으로 아이들은 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 248만1248명인 초등생이 2029년에는 172만9805명으로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동네에 아이들이 줄면 부모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다가오는 불안감에 아이를 데리고 피신하듯 다른 동네로 옮긴다. 그래서 소멸하는 곳, 몰려드는 곳 모두 가속도가 붙는다. 이를 지켜보는 젊은 세대는 ‘굳이 아이를 낳아 저 난장판에 빠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낙후 지역을 되살리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이 바뀌기 어렵다.
필자도 불안감을 안고 떠밀리듯 옮긴 부모들 중 하나다. 이왕이면 조금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 대출을 내 이사했다. 그런데 일방적 결정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생애 첫 친구를, 첫 동네를, 첫 추억을 잃고 허전해하는 딸들을 볼 때마다 요즘 되묻는다. 이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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