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10총선 결과에 따른 국정 쇄신 차원에서 새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을 거듭 고심하고 있다. 당초 새 비서실장 인선이 어제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대통령실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새 비서실장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새 총리에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새 총리와 비서실장에 정치인 출신 ‘정무형’ 인선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총선 패배가 부른 여권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나올 법한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경제관료 출신 대신 정무적 감각을 앞세운 총리와 비서실장 인선이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이 밝힌 ‘국정 쇄신과 경제·민생 안정’ 다짐에 걸맞은지부터 의문이다.
현재 총리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대부분은 윤 대통령 측근 그룹으로 꼽히는 이들이다. 현 정부 인사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대통령이 ‘잘 아는 사람, 같이 일해 본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권 의원과 원 전 장관은 대통령과 같은 대학을 나온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특히 원 전 장관은 이번 총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역구에서 맞붙었는데, 당장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동을 조율하는 역할에 적임자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들 외에도 몇몇 인사의 이름이 흘러나오지만 그 정도의 인물들로 작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 야당에서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 다수가 납득할지도 의문이다.
국민은 총선에서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심판하고 변화를 요구했다. 이런 민심에 부응해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은 총리 인선일 것이다. 무엇보다 거대 야당을 상대할 수 있는 국민통합 총리, 실질적 권한을 가진 책임총리가 필요하다. 대통령에게 고언을 마다하지 않는 강직함, 나아가 야당까지 설득할 수 있는 경륜을 갖춰야 한다.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심기가 아니라 민심을 세심히 살펴 가감 없이 전달하는 국정 조력자여야 한다. 특히 대통령에게 부족한 정책 디테일을 꼼꼼히 챙길 행정 능력도 갖춰야 한다.
그런 인물을 찾으려면 대통령 주변, 나아가 여권 내부의 좁은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나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많은 인사가 소수파 정부에의 참여를 고사할 가능성도 있다. 삼고초려가 모자란다면 십고초려라도 해야 한다.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약속하고 비서실장에게도 직언을 강력하게 요청한다면 손을 내젓던 인사도 응답할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로 윤석열 정부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정부의 위기는 곧 국정의 위기, 국가의 위기다. 능력과 강단을 갖춘 인사들로 정부가 어떤 위기에도 준비돼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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