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10년 전 이날 승객과 승무원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팽목항(진도항) 앞바다에서 침몰해 172명만 구조되고 304명은 그대로 수장됐다. 5명은 시신도 찾지 못했다. 사망자 거의 대부분이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어서 더욱 참담했다. 팽목항과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 경기 안산시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슬픔의 무게 탓만은 아닐 것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다짐에도 참사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사회적 재난도 되풀이되고 있다. 무능한 정부와 기회주의적 야당이 정치적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90일간의 국회 국정조사와 9차례의 국가기관 조사가 있었지만 왜 침몰했는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세월호에서 교훈을 못 얻는 바람에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지난해까지 170여 건의 사회적 재난이 발생해 약 700명이 숨졌다. 세월호 이후 크고 작은 해상 조난 사고도 2배로 급증했다. 재난의 예방과 사후 구조, 제도 개선에서 우리는 왜 실패만 거듭하고 있나.
고교 시절 세월호를 겪고 20대에 이태원 참사를 당한 ‘세월호-이태원 세대’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아프게 증명한다. 세월호를 계기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컨트롤타워로 하는 국가 재난 시스템이 재정비됐지만 대책본부는 이태원 참사 발생 다음 날 새벽에야 늑장 가동됐다. 1조5000억 원을 들여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고도 구조 기관 간 소통 실패로 인명 피해를 키웠다. 정부는 야당의 이태원 특별법을 거부하면서 자체 진상조사도 하지 않았다.
사회적 재난의 생존자들은 “정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 바쁘고, 정치인은 유족들 이용할 궁리만 한다”며 사고 났던 지름길은 피해 둘러 가고 백화점 같은 대형 건물에 들어가면 탈출구부터 찾는다고 토로한다. 영국은 1989년 힐즈버러 경기장 압사 사고가 나자 긴급구조 시스템을, 일본 효고현은 2001년 불꽃축제 압사 사고 후 인파 경비 매뉴얼을 정비해 유사 재난을 막았다.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안전대책을 책임 있게 실천하지 않는다면 세월호 사태는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반복되고 우리 모두 각자도생의 재난수칙에 기대어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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