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관심 속에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13일부터 시민대표단 500명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시작했다. 시민대표단이 연금개혁을 결정한다는 취지는 그럴싸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정부와 국회가 뒷짐 진 채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제대로 된 모수 개혁안(소득대체율-보험료율 조정)을 내놓겠다던 주무 부처 장관 말은 공수표가 됐다. 더군다나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는 전문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재정안정 방안을 무력화시켰다. 자문위원 15명 중에서 10명이 선호했던 안(소득대체율 40% 현행 유지-보험료 15%로 인상, 현재는 소득대체율 42%-보험료 9%)이 무력화되면서 전문가가 왜 그 안을 선호했는지 시민대표단은 모른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투표로 다수안(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이 결정됐음에도 다수안 표기 없이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다. 재정추계 기간 말(2093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누적적자 비율은 위원회 합의와는 다른 기금투자수익률로 수록됐다. 원래 합의 내용이었던 국채 이자율로 할인한다면 누적적자 비율은 2배가량 더 늘어난다. 위원 동의 없이 합의사항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 수치마저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는 빠졌다.
공론화위원회 운영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수 전문가가 선호한 재정안정 방안은 무력화시키고 소득대체율, 즉 ‘받는 돈’을 더 올리자는 위원 중심으로 자문단을 구성했다. 공론화위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36개 이해집단은 시민대표단이 토론할 재정안정 의제 2개를 확정했다. 1안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로 인상, 2안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2%로 인상이다. 2개 안 중에서 1안은 2093년까지 적자가 702조 원 늘어난다. 반면에 2안은 2093년까지 적자를 1970조 원 줄여준다. 2안은 기존 재정안정 방안보다 약하긴 하나 적자를 줄인다는 측면에서는 개혁안이라 할 수 있다. 두 안의 미래세대 부담 전가 규모 차이가 2700조 원이라는 점을 시민대표단이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연금개혁을 결정할 시민단은 핵심 정보를 배제한 자료로 공부하고 있다. 공론화위에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핵심 재정지표가 소득보장 강화를 옹호하는 자문단 항의로 학습자료에서 배제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가 심각하다. 대안별 장기 효과가 제외된 자료로 시민대표단이 학습하다 보니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연금 포퓰리즘이 활개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공론화위가 롤모델로 삼는 영국 공론화위는 핵심 정보를 제공해 시민들의 2차 투표에서 제대로 된 개혁 방향을 이끌어냈다. 우리 역시 유사 사례가 있다. EBS TV 저출산 특집에서 시민 500명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한 이후 투표 결과가 뒤집혔다. 고통스러운 개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현재 공론화위는 공론화란 이름으로 국민·언론을 기망하고 있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정보가 시민대표단에 전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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