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놓쳤다. 지난달부터 에어컨 무상 사전점검 안내를 봤는데, 미루다가 결국 시기가 지났다. 주변을 살펴보면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왜 잘 안 할까? 그만큼 필요하다고 못 느꼈기 때문이다. 예약하고 방문 시간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미리 점검해서 얻는 이득보다 큰 것이다. 누군가는 조금만 버티면 다시 시원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버틸지도 모른다. 그런데 곧 찾아올 더위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대도 똑같이 행동할까?
집에 에어컨이 있다면, 지구의 에어컨은 남극과 북극이다. 태양 빛을 반사해 지구의 온도를 낮추고, 지구에 있는 물의 2% 정도를 얼음 형태로 머금고 있다. 이 거대한 에어컨의 냉방과 제습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 원인은 기후변화. 인간 활동으로 늘어난 탄소가 지구의 끝자락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정부와 국제사회가 나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며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지구 에어컨 문제에서도 번거로움이 수고로움을 앞서는 모양이다.
30년간 극지를 연구한 과학자가 보는 지구 에어컨은,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이다. 지구의 양 끝은 무서운 속도로 녹고 있다. 인류 역사상 극지방이 이렇게 빠르게 변했던 적은 없었다. 현재 기후변화 대응 목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의 1.5도 이내 상승이지만 극지는 이보다 2∼3배 더 올랐다. 덥고 추운 지역일수록 변화의 폭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남극기지 두 곳도 2022년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그해 3월 장보고 기지는 영상 8도를 기록했는데, 이전까지 3월 기온이 영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극지는 원래 에어컨 이외에 다른 기능도 했다. 인류의 미래 먹거리가 저장된 팬트리이자 특별한 지식이 보관된 서재이다. 대체 불가능한 매력에 이끌려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극지에 모였다. 대한민국의 극지연구소가 문을 연 2004년만 해도 기후변화는 여러 연구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20년 만에 기후변화는 극지 연구의 다양성을 걱정할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가 됐다. 에어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팬트리와 서재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지연구소는 지구 에어컨 이상 신호 감시자다. 그동안 우리가 찾아낸 극지의 변화들은 이것이 단순히 극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얼음이 사라진 극지는 더 많은 열을 품으면서 기온과 해수면을 끌어올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다시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다.
지구 에어컨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사람의 기술로 완전히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더위가 물러가면 좋겠지만, 지구에 다음 빙하기가 찾아오려면 적어도 수천, 수만 년은 지나야 한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위에 적당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포기할 수는 없다. 고장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늦추거나 정도를 완화할 수는 있다. 지구의 끝을 감시하는 과학자들의 다급한 외침이 많은 이들의 귀에 닿길, 그리고 수고로움을 감내할 행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지구 에어컨을 생각하며, 올여름 에어컨 사용은 적당히 하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