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을 때 짐은 먼저 일어나고, 신하들이 이미 잠들었어도 짐은 잠들지 못하노라. 황제인 내가 강남의 부자 영감만 못하다니, 저들은 해가 중천에 떠도 아직 이불 뒤집어쓰고 있거늘.
(百僚未起朕先起, 百僚已睡朕未睡, 不如江南富足翁, 日高丈五猶披被.)
―‘무제(無題)’ 명 태조(1328∼1398)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시로 전해진다. 황제의 어투가 분명한데 문학적 세련미라곤 없고 투박하기까지 하다. 빈민 출신으로 홍건적에 가담하여 거칠게 성장한 데다 학문을 접해본 경험조차 없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얼핏 보면 황제가 객쩍은 불평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꽤 치밀한 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른바 ‘타유시(打油詩)’의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시라기보다는 언어유희에 가깝다. 유머러스하고 직설적이며 때로 풍자적이기도 해서 남의 주목을 끄는 데 유리하다. 황제는 타유시의 이런 특징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이 국사에 매진하는 명군이라는 선전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한데 거리에 떠도는 황제의 이 시를 예사로이 넘기지 않은 강남의 한 부호(富豪)가 있었다. 심만이(沈萬二), 이 시를 보는 순간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제 올 것이 오는구나. 의심 많고 잔인한 황제가 개국공신을 포함하여 수만 명의 신하와 그 가족들을 처단한 사례를 보았던 터다. 다음 차례가 부자 집단이란 걸 직감한 그는 자산을 처분해 멀리 도피했고, 그의 권유를 무시한 동생은 결국 파산을 맞고 오지로 유배되었다. 해학적이다 싶던 이 시에 이토록 살벌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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