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성이 깃든 공간[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8일 23시 27분


경기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다. 지금 이곳은 한국 건축 역사에서 가장 크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쓰이고 있는 곳이다.

적벽돌로 구축한 견고한 건물로 그 안에 들어가 생활하는 인간에게 깊은 평화와 안전을 느끼게 하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약 8년 만에 위용 넘치는 대성당을 완공했고, 지금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건축가들의 건축가’로 불리는 페터 춤토르가 티(tea) 채플을 설계하고 있는 덕분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스위스 산골 마을 할덴슈타인에 거주하며 은둔의 철학자처럼 작업하는 그가 지은 건물은 전 세계를 통틀어 채 10개 정도밖에 안 되지만 모두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오라와 분위기로 유명하다. 티 채플이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이 건물은 그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가 된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상각 신부의 이름에도 관심과 호기심이 닿게 된다. 보통 5년에 한 번씩 이동하는 관례와 달리 사제품을 받고 35년간 남양에서만 사제 생활을 한 그는 이 땅을 일구고 단장하면서 세계적 건축물을 짓기로 결심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야심과 포부도 어쩌면 오래전 패러다임. 안온한 하루에 방점을 찍는 시대에 나의 할 일을 저 높은 곳에 위치시키는 이상이 대단해, 그가 이 모든 건축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 ‘이루어지소서’도 탐독하듯 읽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가는 종당에 ‘영성’이 깃든 건축물을 짓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신심’이라는 것.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단순한 이분법을 떠나 구원과 영성의 기운으로 아름다운 공간은 그 자체로 강력한 이끌림이 된다.

현장에 도착해 보행로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야트막한 언덕, 그 밑으로 한창 조성 중인 정원, 평화로운 기운의 성모상과 세련된 디자인의 건축물을 지나면서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도 구원은 작동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종교 건축은 공공 건축이기도 하다는 것. 한 도시와 나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평가할 때 도서관과 공원, 미술관 같은 공공 건축은 절대적 중요성을 지니는데 잘 지은 성당 역시 공공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사람이 그 건물을 종교의 것이라 구분 짓지 않고 나의 삶과도 연결돼 있으니 이왕이면 더 아름답게 지어 달라고 요구하고 욕심낼 때 비로소 ‘사회의 미감’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예산을 포함해 여러 난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춤토르의 티 채플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면 좋겠다.
#구원#영성#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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