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다. 지금 이곳은 한국 건축 역사에서 가장 크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쓰이고 있는 곳이다.
적벽돌로 구축한 견고한 건물로 그 안에 들어가 생활하는 인간에게 깊은 평화와 안전을 느끼게 하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약 8년 만에 위용 넘치는 대성당을 완공했고, 지금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건축가들의 건축가’로 불리는 페터 춤토르가 티(tea) 채플을 설계하고 있는 덕분이다.
스위스 산골 마을 할덴슈타인에 거주하며 은둔의 철학자처럼 작업하는 그가 지은 건물은 전 세계를 통틀어 채 10개 정도밖에 안 되지만 모두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오라와 분위기로 유명하다. 티 채플이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이 건물은 그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가 된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상각 신부의 이름에도 관심과 호기심이 닿게 된다. 보통 5년에 한 번씩 이동하는 관례와 달리 사제품을 받고 35년간 남양에서만 사제 생활을 한 그는 이 땅을 일구고 단장하면서 세계적 건축물을 짓기로 결심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야심과 포부도 어쩌면 오래전 패러다임. 안온한 하루에 방점을 찍는 시대에 나의 할 일을 저 높은 곳에 위치시키는 이상이 대단해, 그가 이 모든 건축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 ‘이루어지소서’도 탐독하듯 읽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가는 종당에 ‘영성’이 깃든 건축물을 짓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신심’이라는 것.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단순한 이분법을 떠나 구원과 영성의 기운으로 아름다운 공간은 그 자체로 강력한 이끌림이 된다.
현장에 도착해 보행로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야트막한 언덕, 그 밑으로 한창 조성 중인 정원, 평화로운 기운의 성모상과 세련된 디자인의 건축물을 지나면서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도 구원은 작동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종교 건축은 공공 건축이기도 하다는 것. 한 도시와 나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평가할 때 도서관과 공원, 미술관 같은 공공 건축은 절대적 중요성을 지니는데 잘 지은 성당 역시 공공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사람이 그 건물을 종교의 것이라 구분 짓지 않고 나의 삶과도 연결돼 있으니 이왕이면 더 아름답게 지어 달라고 요구하고 욕심낼 때 비로소 ‘사회의 미감’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예산을 포함해 여러 난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춤토르의 티 채플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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