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5세인 2009년생부터는 평생 담배를 살 수 없도록 한 초강력 금연법이 최근 영국 하원에서 1차 표결을 통과했다. 리시 수낵 총리가 추진한 법인데 여당인 보수당 의원들은 대거 반대하거나 기권하고 야당인 노동당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노동당은 “보건정책의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한 반면 보수당에선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보수당답지 않은 정책”이란 비판이 거세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작심 발언을 했다. “국가가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해선 안 된다. 경찰국가를 넘어 유모국가로 가자는 것인가.”
▷‘비흡연 세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2009년생이 담배 구입 가능 연령(18세)이 되는 2027년부터 허용 연령을 한 살씩 올려 평생 못 사게 막자는 것이다. 흡연자를 처벌하는 건 아니고, 담배를 판 상인에게 벌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영국에서는 무상의료 시스템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느라 과부하에 걸리면서 강력한 금연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져 왔다. 이런 목적으로 쓰이는 예산이 연간 28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돈을 의사 채용과 병상 확충에 쓰면 다른 환자들이 의사를 기다리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금연법에 대한 서민들이 지지가 높다.
▷수낵 총리는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는 금식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단지 건강에 대한 소신 때문에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연법을 밀어붙이는 건 아니다. 사회복지 축소와 부자 감세 등 반서민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영국 역사상 최단기(44일)로 물러난 전임자(트러스 전 총리)의 실책이 그의 결단에 한몫을 했다. 게다가 야당인 노동당(45%)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보수당(26%)보다 크게 높다 보니 중도·서민층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이번 금연법이 발효되려면 하원의 최종 표결에 이어 상원까지 통과해야 한다. 작은 정부와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해온 보수당의 반대가 만만찮아 시행을 장담하긴 이르다. 흡연을 통제하면 담배 암시장이 난립하고, 전자담배 수요만 자극할 것이란 우려도 많다. 뉴질랜드 진보의 아이콘인 저신다 아던 전 총리(노동당)도 같은 내용의 금연법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보수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뒤 법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시가 애호가였던) 윈스턴 처칠 전 총리를 배출한 보수당이 담배를 금지하려 한다니 미친 짓이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수낵 총리를 저격하며 처칠을 소환했다. 처칠은 “나는 시가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시가는 생각의 동반자이자 실패의 위로자”란 말을 남길 정도로 골초였다. 하지만 그는 오랜 흡연으로 인해 폐질환과 고혈압에 시달리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처칠의 경우는 금연법 도입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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