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뿔 한우와 파리의 방목소 고기[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1일 23시 30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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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오는 가족이나 손님을 모시고 식사할 기회가 잦다. 손님들에게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셋으로 나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같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꼭 가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고, 프랑스 음식은 느끼하다는 선입견으로 한국 음식 아니면 아시안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또 하나는 뚜렷이 원하는 것이 없다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는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전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전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좋은 스테이크는 씹을 때 느껴지는 훌륭한 맛과 입안 가득 퍼지는 육향이 그만이다. 프랑스의 드넓은 초원에서 길러지는 소들은 지방이 많지 않아 담백하다. 그중에서 내가 선호하는 프랑스의 쇠고기 품종은 오브라크나 샤롤레다. 거문고 모양의 뿔을 갖고 야외에서 풀만 먹는 오브라크 소는 세벤 고원에서 자라는데 약간의 섬세한 마블링이 있고 육향이 진한 편이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흰색 소인 샤롤레는 부드럽고 풍성한 육즙이 일품이다.

나는 한국의 소고기 등급에 반대한다. 살코기 자체의 맛이나 품종에 따른 차별화보다는 지방 부분, 즉 마블링이 17% 이상이어야 최상급을 받는 우리나라의 등급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랑스에는 ‘라벨 루주(Label rouge)’ 제도가 있다. ‘라벨 루주’ 등급을 받으려면 소에게 유전자 변형 재료(GMO)나 팜유를 사용하지 않은 100% 식물성 사료와 풀을 먹이고 7∼8개월 방목해야 한다. 100ha(헥타르)당 평균 60마리만 방목해야 하고, 도축 후에는 최소 10일 이상 숙성시킨 다음 출하한다는 규정도 따라야 한다. 초원에서 방목해야 하는 프랑스와 가두어 키우면서 사료를 많이 먹여 살을 찌워야 좋은 가격을 받는 우리나라의 등급 제도는 어쩌면 정반대인 셈이다.

내가 파리에서 사랑하는 정육식당이 둘 있다. ‘도살자 중의 스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위고 드누아예(Hugo Desnoyer)가 파리 16구에서 운영하는 동명의 레스토랑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드누아예가 우연히 일하게 된 정육점에 큰 흥미를 느껴 파리 14구에 작은 정육점을 열었다가 마누엘 마르티네스 같은 유명 셰프들이 단골로 드나들면서 유명해졌다. 여기에 가면 탁월한 품질의 쇠고기가 접시 위에 올라오는데 충분한 숙성 작업을 거친 푸짐한 비주얼의 갈빗살이나 안심이 탁월하다. 1987년 파리 14구에 문을 연 정육식당 세베로(Severo) 역시 ‘최애’ 식당이다. 통후추가 들어간 프랑스 스타일의 육회 타르타르와 오래된 숙성 치즈를 곁들인 ‘타타키 드 뵈프’는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만큼 아쉬움을 주는 메뉴들이다. 일본에도 2개 지점을 낸 이 레스토랑은 25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정육업자이자 레스토랑 오너인 윌리암 베르네가 여기만의 명징한 맛의 기준을 잡아 놓은 까닭에 세월이 흘러도 맛의 완성도가 변치 않고 대단히 높은 편이다.

입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걸맞은 우리네 한우와 달리 씹는 즐거움이 느껴지는 파리의 정육식당 메뉴들은 우리가 평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맛을 제시하는 신세계와도 같은 곳이다. 다만 투뿔 한우를 지나치게 맹신하거나 ‘마블링=맛있는 소고기’라는 선입견만 앞세우지 않을 때 말이다.

#투뿔 한우#파리#방목소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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