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이렇게 된 거, ‘출산율 0명’에 도전해보자[광화문에서/조건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1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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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사회부 차장
조건희 사회부 차장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전 세계가 걱정하는데 본인만 태평하다. 유례없는 한국의 저출생 얘기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은 “14세기 흑사병 때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올 2월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단순한 대책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만국이 ‘우리는 한국처럼 되지 말자’며 각오를 다진다.

남녀 10쌍이 아이를 7명도 안 낳는 ‘합계출산율 0.65명’(지난해 10∼12월 기준)도 전례가 없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사회가 저출생에 너무나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한국은 22년 전부터 줄곧 초저출생국(출산율 1.3명 이하)이었다. 위기를 느끼는 감각이 마비됐다. 잦은 공습경보에 귀가 먹먹해진 것처럼, 서서히 끓는 물에 잠긴 개구리처럼.

저출생 문제를 두고 ‘백약이 소용없다’고들 한다. 우리는 정말 백약을 다 써봤을까. 정부가 300조 원 넘게 투입했다는 저출생 예산을 뜯어보면 ‘빌려줬다가 돌려받는’ 융자 지원 등 거품이 잔뜩이다. 대다수 기업은 가족 친화 사회 환경을 만들 책임을 버려둔 채 ‘그게 돈이 되냐’는 태도다. 한 인구학자가 한탄했다. “차라리 출산율이 0명으로 떨어져 봐야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하려나요.”

‘진짜 바닥’을 찍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심지어 가속할 방법도 있다. 아이를 더 낳는 데 도움이 된다고 검증된 정책을 폐기하거나 정반대로 하는 거다. 혹여 일부라도 실현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몇 가지 꼽아봤다. 한국은행이 1월 발표한 초저출산 대책 보고서를 참고했다.

첫째, 청년 고용·주거 지원을 중단하고 서울에 인프라를 ‘몰빵’한다. 청년 고용률과 도시 인구 집중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맞추면 출산율이 0.5명 넘게 증가한다고 한다. 젊은 부부가 ‘내 집’을 엄두도 못 내면 출산율은 반등할 수 없다. 먹이와 둥지를 찾지 못한 새들은 알을 품지 않는다. 지금처럼 서울(특히 강남)에 사회기반시설(SOC)을 몰아주고, ‘영끌’ 매수를 부추기는 건 덤이다.

둘째, 육아휴직을 축소한다. 육아휴직은 ‘제로(0) 출생’으로 향하는 길에 주요한 ‘걸림돌’이다. 국내 육아휴직 평균 기간(10.3주)을 OECD 평균(61.4주)으로 올리면 출산율이 0.1명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휴직할 때 눈치 보는 문화를 조성하고 복귀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 출산 억제 효과는 더 커진다. 이미 여러 기업이 실천하고 있다.

셋째, 사교육 활성화로 내수를 진작한다. ‘부모 월급=자녀 학원비’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출산을 고민하는 부부 상당수를 ‘딩크족’(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으로 만들 수 있다. 유명 입시학원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권한을 공식 부여하고 초중고 교육과정은 학원 입학 경쟁에 맞춰 재편하면 쐐기를 박을 수 있다. 경찰이 사교육 카르텔 수사를 흐지부지 끝내면 교육 정상화의 기대를 짓밟는 데 도움이 되겠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르면 이번 주에 만난다고 한다. 저출생만큼은 꼭 해결하자고 서로 약속하고, 실천해 줬으면 좋겠다. 이대로는 대통령을 기억할 국민도 없어질 판이다.

#출산율#저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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