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낸 이후 정부가 설치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17일까지 두 달간 2392건의 피해 상담이 접수됐다. 하지만 의료 공백과 연관성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신고자들은 “진행 상황을 문의해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또 정부는 피해를 신고한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법률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소송을 지원한 사례는 없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이후 응급실에 간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다가 숨지는 이른바 ‘응급실 표류’ 사고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병원 7곳에서 수용이 거부된 뒤 숨진 대전 80대 심정지 환자 등 언론에 보도된 사례 중 2건에 대해선 이미 전공의 사직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료계 역시 “신속하게 이송됐더라도 살릴 수 없었던 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의대 증원을 놓고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가 이들 사례에 대해선 ‘전공의 이탈 탓이 아니다’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반면 유가족들 사이에선 “의료공백으로 인해 혹시 모를 생존 가능성이 사라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 운영이 축소되거나 수술 인력이 줄어 결과적으로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을 수 있는데, 정부와 의료계 모두 원인 규명에 소극적이라는 취지다. 환자단체에선 “양측 모두 국민의 질타가 무서워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의심한다. 의료공백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의대 증원을 강행한 정부나 병원을 떠난 의사 모두 책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정 갈등이 길어질수록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환자들의 불안은 커질 것이다. 더욱이 25일부터는 전공의 역할까지 떠맡고 있는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현실화되면서 진료 차질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중환자들은 “갑자기 쓰러지면 제때 치료를 받을 수는 있을지 두렵다”고 호소한다. 이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정부와 의료계가 하루빨리 테이블에 앉아 해법을 찾아야 할 이유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