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3루수로 뛰었던 김용국 TBC 야구 해설위원(62)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항상 유쾌한 사람이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아들뻘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겐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선수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진 못했지만 삼성 코치를 지내면서 5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그는 뛰어난 수비에 비해 타격이 약해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2루수 부문 이 상을 차지한 나바로(도미니카공화국) 대신 단상에 올랐다. 그는 “꿈에 나바로가 나타나 기자분들과 감독님, 팬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 달라고 하더라”라고 말해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야구 ‘유급 코치’가 됐다. 실업야구 현대 피닉스 코치로 잠시 일했던 그는 1997년 가족을 모두 데리고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 첫해엔 밀워키 산하 루키리그 코치를 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밀워키 산하 싱글A에서 수비 및 주루코치를 맡았다. 그리고 3년째인 1999년 그는 밀워키 구단과 정식 코치 계약을 했다. 1년 차에 원정 식사비, 2년 차에 6개월 아파트 렌트비만 받았던 그는 렌트비 전액 지원과 함께 연봉 3만 달러를 받았다.
미국에서 동료들과 선수들은 그를 “용(Yong)”이라고 불렀다. 성실함과 낙천성, 친화력, 유머 감각까지 갖춘 ‘용 코치’는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원정 경기에 가면 한참 어린 선수들과 함께 식당에 가 맥주 한 병씩을 돌리곤 했다. 그는 “영어를 잘하진 못했지만 진심을 다해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몇 년 더 있었으면 마이너리그 감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LG, 삼성, KT 등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프로야구 선수로 11년, 지도자로 19년 등 30년간 현장을 누볐던 그는 요즘 야구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삼성의 한 시즌 144경기를 모두 따라다니며 라디오 해설을 한다. 야구를 사랑하고 말솜씨가 좋은 그로서는 ‘천직’이다. 김 위원은 “편파 중계는 아니다. 다만 삼성을 중심으로 한 ‘편애 중계’인 것은 맞다”며 “야구 좀 아는 아재와 함께 맥주 한 잔 마신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들어주시면 된다”면서 웃었다.
60대 나이에도 그는 배팅 볼을 던질 만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꼽은 비결은 팔굽혀펴기다. 그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틈만 나면 팔굽혀펴기를 한다. 한 번에 20개씩, 하루에 100개 안팎을 한다. 그런데 개수를 세는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대개는 팔을 굽혔다 올라올 때 숫자를 세지만 그는 내려갈 때 숫자를 센다. 그는 “팔굽혀펴기만 꾸준히 해도 어깨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야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야구와 가까이 있으니 행복한 인생”이라며 “해설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야구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 언제까지나 야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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