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교과서’ 검정 통과를 즉각 취소하라.” 일본 문부과학성이 19일 레이와서적의 중등 역사 교과서 2권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성명이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만큼 이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병 등 한일 간의 과거사를 왜곡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서술이다. 이 교과서는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은 없으며 그들은 보수를 받고 일했다”고 적었다. 돈을 벌려고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에는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 모집은)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돼 있다. 일본 정부도 인정한 내용을 학생들은 반대로 배우게 됐다.
▷이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 지배는 미화하고 정당화했다. “안전 보장을 위해 일본이 주도해 조선의 근대화를 진행”한 것이고, 을사늑약 당시 고종이 “만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늑약 체결 직전까지 이토 히로부미에게 사람을 보내 ‘대신들이 반대한다’며 유예를 요청했을 만큼 부정적이었고(최덕수 ‘근대 조선과 세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단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합병한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교과서 몇 줄로 뒤집을 수 없는 역사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우익 사관을 반영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3월 검정을 통과한 이쿠호샤 중등 역사 교과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서술을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았다”에서 “혹독한 환경에서 일한 사람들도 있었다”로 바꿔 징용의 강제성을 흐리게 했고, 야마카와출판의 교과서는 ‘종군위안부’ 표현을 삭제했다. 지난해에는 조선인이 ‘징병됐다’는 표현을 뺀 초등학생용 사회 교과서들이 승인됐다. 프랑스와 공동으로 제작한 역사 교과서로 객관적 시각에서 나치의 책임과 과오를 가르치는 독일과 대비된다.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개선되는 흐름이지만 과거사 문제는 제자리다.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는 등 노력을 기울인 반면 일본은 달라진 게 없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최근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고, 외교청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거듭 적었다. 여기에 역사 교과서까지 퇴행하고 있다. 정확하고 균형 잡힌 역사를 배워야 미래 세대에서라도 과거사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일본 정부가 그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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