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관료주의와 규제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프랑스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관료주의를 놔둔 채로는 성장 둔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유럽에선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승승장구하는 미국과 갈수록 활력을 잃는 유럽 경제의 차이를 낳은 주요 원인이 관료주의로 인한 ‘정부의 실패’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최근 “짜증 나는 규제와 ‘행정 지옥’에서 벗어나 기업이 더 편하게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겠다”고 했다. 은행 계좌 하나 여는 데 한 달씩 걸리는 관료주의의 폐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무원 중 일부는 민간 기업에서 인턴직 경험을 하도록 하고, 공무원의 재가가 필요한 허가제도는 사전신고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프랑스 의회는 관료주의의 사회적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3%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임기 때 근로자 해고 요건 완화 등 노동개혁을 추진했고, 작년엔 수급 연령을 2년 늦추는 연금개혁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관료주의 타파로 잡았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의 첫발도 떼지 못했다. 오히려 금융·물가관리 등 많은 분야에서 공무원이 민간에 권한을 행사하는 ‘관치(官治)’가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료들은 안정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소속 조직의 권한과 복잡한 업무 관행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관료주의적 사회에서 규제가 양산되고,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이 제약을 받는 이유다. 더욱이 2년 전 정권교체 후 지난 정부에서 주요 정책을 수행한 공무원들이 업무와 관련해 대대적으로 조사나 감사를 받거나 인사 불이익을 당하면서 복지부동 관행이 심해지고 있다. 현 정부도 임기 초엔 ‘접시 깨는 공무원 보호 및 우대 정책’을 표방하고, 소신껏 일하는 공무원을 지키면서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말로 그쳤을 뿐이다.
그사이 한국보다 관료주의가 심한 것으로 평가되던 일본에선 5년 걸릴 반도체 공장 건설을 2년 만에 가능케 할 정도로 공무원들의 역할과 분위기가 급변했다. 반면 한국 청년들이 세운 스타트업들은 ‘갈라파고스 규제’를 피해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거나,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현지에서 사업을 벌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공직사회의 근본적 개혁 없인 한국의 성장 잠재력 추락을 막는 건 대단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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