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행복을 질투할수록 작아지는 나의 행복[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9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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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근거로 한국인이 세계에서 시기와 질투가 가장 많은 민족이라는 자조적인 한탄이 생겨나기도 한다. 물론 잘못된 편견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가장 크게 증가한 시기는 경제적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던 1990년부터다. 가난할 때보다 풍족할 때 자살이 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정신적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은 배고픔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의 증가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승자가 되면 누군가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성공지향적 사회에서는 치열한 경쟁만큼 상실감과 절망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이러한 시기심(envy)과 자존감(self-respect, self-esteem)의 관계를 정치철학에서 풀어낸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자존감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던 롤스에게 정의로운 사회란 개인의 자존감이 최소한 보장되는 체계를 말한다. 그의 사회계약론이 전제하는 인간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과 ‘상호무관심’ 원칙에 따라 타인에 대해 시기심을 갖지 않을 정도로 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실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자존감은 ‘좋은 것’을 두고 싸우는 무한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시기심에 의해 파괴되고 훼손된다. 경쟁에서 남이 나보다 더 많은 기회나 업적을 갖게 되면 나의 존재감은 낮아진다. 롤스에 따르면 불평등에 따른 시기심은 경제 활동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친 시기심은 자존감 손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할 경우 사회적 약자, 가난한 사람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물질적 차원뿐만 아니라 도덕·심리적 차원에서 정치적 평등이 충분히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자존감과 시기심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러나 물질적인 부가 아무리 많이 축적되고 재화가 공정하게 분배된다고 해도 상대적 비교 감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객관적인 행복지표가 높은 잘사는 나라에서도 모든 사람의 시기심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비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기 때문이다.

시기심은 타인의 행복에 대해 불행을 느끼는 악덕이다. 명성, 부, 성공, 지식, 사회적 위상, 인맥 등 자신이 갖고자 욕구하는 대상을 다른 사람이 가질 때 그 가치를 부정하고 싶은 이율배반의 심리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지만 남이 부자가 되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시기심은 성공지향적인 사회, 돈을 목표로 무한 경쟁하며 승리자와 낙오자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사회에선 없앨 수 없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질투는 인간의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불행의 씨앗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투를 늘 경계해야 한다. 타인의 행복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 자존감을 갉아먹는 시기심을 줄이는 일은 사회적인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욕심을 줄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타인의 성공을 축하하고 행복에 기뻐할 수 있는 덕목도 갖춰야 할 것이다.

#시기#질투#정의론#자존감#마음의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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