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의 도시[임용한의 전쟁사]〈313〉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9일 23시 33분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의 도시 아시시는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다. 그의 생가는 현재 성당이 되어 있는데, 아시시의 중심 광장 바로 근처에 있다. 생가의 입지가 보여주듯이 그의 부친은 상당한 부를 쌓은 상인이었다.

소년 시절 부유하고 방탕하게 살던 그는 출세를 동경하며 기사가 되어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포로가 되어 1년간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이 포로 생활이 그에게 인생과 죽음, 삶의 가치에 대해 깨닫게 했던 것 같다.

몇 년 뒤 다시 참전을 위해 길을 나서던 그는 문득 깨달음을 얻고, 삶의 목표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그가 살았던 13세기의 교회, 특히 교황과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들은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이었다. 교황령은 이탈리아에서 제일 큰 국가였고, 전 유럽 귀족들이 교황과 성직을 탐냈다. 이런 시대에 프란체스코는 부와 권력을 멀리하고 오직 수양, 기도, 봉사에 헌신하는 진정한 종교인, 수도사의 자세를 가르쳤다.

그는 정식으로 사제품을 받지도 않았지만, 가톨릭의 성인이 되었으며, 그가 창설한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순식간에 전 유럽에서 제일 번창하고 존경받는 수도회가 되었다. 심지어 귀족과 부자들도 프란체스코회의 성당에 묻히고 싶어 했다.

아시시에는 교황 명령으로 프란체스코 기념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 아시시는 밝고 따뜻한 도시이다. 이탈리아 소도시 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아시시를 최고로 꼽는다.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이 있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도시의 건물 배치 자체가 요새 기능을 겸한다. 요새 기능에 치중할수록 거리는 좁고 어두워진다. 아시시는 건물 간격을 느슨하게 배치한 대신 도시 정상에 로카 마조레라는 다른 도시 성채와 비교해도 특별하고 강력한 요새를 건설했다. 성과 속, 생활공간과 요새의 절묘한 균형이 밝은 아시시의 비결이다.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도 국방에 관해서는 낭만적인 발상을 거부한다.

#성 프란체스코#아시시#소도시 투어#프란체스코 기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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