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지난달 1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49일 집권한 영국 최단명 총리인 그는 재무부, 중앙은행, 예산처 등 주요 부처 곳곳에 좌파 인사가 포진해 비밀관료 집단 ‘딥스테이트(deep state)’ 일원으로 활동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애국자인 자신의 감세 정책을 훼방 놓아 뜻을 펼 수 없었다고 했다.
트러스 전 총리가 집권한 2022년 9, 10월 영국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나들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원래 나랏빚이 많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심화한 고물가 고금리로 국채 이자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깎으면 빚은 늘고 물가는 더 오른다. 즉, 애초에 감세를 하면 안 되는데 무리하게 고집해 파운드화 가치를 급락시킨 것이 사퇴 원인이다.
그는 명문 옥스퍼드대에서도 최상위 학생만 입학하는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했다. 34세에 의원이 됐고 외교, 법무, 국제통상, 환경 등 주요 부처 수장을 지냈다. 47세엔 총리에 올랐다.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출세 가도를 달린 그가 실체도 불분명한 몇몇 인사의 공작에 당했다고? 전 세계 4분의 1을 지배했고, 지금도 6위 경제대국인 조국을 욕보이는 일이다.
진짜 목적은 그가 지난달 출간한 저서 ‘서구를 구하기 위한 10년’을 홍보하려는 ‘노이즈마케팅’ 성격이 짙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는 책에서 범세계적인 보수주의 부활이 필요하며 좌파, 환경단체 등은 일종의 사회악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주의에 장애물인 유엔,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도 해체하자고 외친다.
또 자신과 노선이 비슷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해 선거 운동원처럼 뛰고 있다. 올 2월 미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에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은 각국 전현직 지도자는 많아도 유세장에 나타난 사람은 트러스가 유일하다.
전직 총리가 대서양을 오가며 논란을 야기할 언행으로 일관하는 것은 먹고살기 힘든 영국 서민의 짜증 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영국의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2.7%로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다. 성장률 예상치 또한 0.4%로 독일을 제외하면 가장 낮다.
이런 트러스의 반대편에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있다. 현직 때는 오일쇼크에 따른 경제난, 이란 혁명세력의 미 대사관 점거 및 인질 억류 등으로 인기가 없었다. 재선에 실패했지만 퇴임 후 각국 저소득층에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봉사, 기아 퇴치 운동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탔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지난해 2월부터 암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 카터 전 대통령이 호스피스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확산시켰다고 호평했다. 많은 미국인이 호스피스 치료를 아예 안 받거나, 너무 늦을 때까지 미루는데 초고령 환자인 그가 15개월 넘게 생존해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꿨다는 것이다.
1924년 10월 1일 생인 카터 전 대통령은 다섯 달 후 100세가 된다. 퇴임 후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권력자가 흔치 않은 시대. 그가 꼭 생일을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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