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한 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인데, 고발 8개월 만에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별도의 수사기관이 필요하다.”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 사망 사건 외압 논란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가 2일 법안 제안에서 한 말이다. 이후 특검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TV로 이 모습을 보면서 며칠 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던 판사 출신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자가 떠올랐다.
지난달 26일 지명된 그는 “고위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국민적 열망을 안고 설립된 공수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국민 신뢰를 받도록 고민하겠다”고 했다. 그런 오 후보자나 공수처에 ‘제 역할 못 하는 공수처가 특검 이유’라는 지적은 아픈 대목이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로 군검찰에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은 지난해 8월 국방부 관계자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는 지난달에야 핵심 피의자 조사에 나섰다.
1기 출범 3년간 성과 없고 잡음만
2021년 1월 출범한 공수처는 ‘공수(空手)처’라는 오명을 얻었다. 3년 4개월간 공수처가 청구한 5건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직접 기소한 사건도 4건 중 1심에서 유죄가 나온 건 손준성 검사장 고발사주 사건뿐이다. 2021년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 등 공수처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초대 김진욱 공수처장이 올해 1월 퇴임한 후 지휘부 공백도 3개월 이상 이어졌다.
‘수장이 바뀌어도 공수처는 달라질 게 없다’는 비관론도 팽배하다. 특히 전직 공수처 검사들은 ‘구조적 문제 탓에 개선의 여지가 적다’고 강조한다. 출범 초기 검사 25명 중 현재 공수처에 남은 검사가 1명뿐인 이유다. 공수처법상 수사와 기소 대상이 분리돼 있다. 수사 대상은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 3급 이상 공무원까지다. 기소 대상은 대법원장,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고위 경찰 등 사법기관 공직자로 국한된다. 나머지 피의자는 공수처가 수사해 검찰에 공소 제기를 요구하면 검찰이 기소한다. 수사할 수 있는 범죄 또한 직무유기, 직권남용, 뇌물범죄 등으로 정해져 있다. 고위공직자 뇌물은 민간 비리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뇌물을 마련한 민간인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 때도 공수처법상 제한된 대상과 범죄 때문에 수사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전직 검사들 “수사 어려운 구조 고쳐야”
전직 검사들은 “인지수사로 파고들다 보면 고구마 줄기처럼 예상외 정보가 나오고 권력 비리 수사가 시작되는데, 현행 공수처법에서는 이 과정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검사는 “공수처를 ‘직권남용처’라고 부른다”고 했다. 여러 제약 탓에 고소나 고발로 시작되는 ‘직권남용’ 수사만 주로 했다는 푸념이다. 22대 국회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게 전직 공수처 검사들의 주장이다.
“사건 하나가 재판까지 끝나는 데 3, 4년 걸린다. 그사이 검사들이 다 바뀐다”며 수사 인력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제언도 나왔다. 공수처 검사 임기는 3년이다. 5월 현재 공수처 검사는 19명, 수사관은 36명. 정원(검사 25명, 수사관 4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지휘부는 그럴듯한 수사 성과에만 매달렸다고 ‘공수처를 떠난 이유’란 회고록을 낸 김성문 전 부장검사가 밝혔다. 이 밖에 공수처를 상설특검 형태로 운영하거나, 사건을 고르는 선별입건제 재도입 등 다양한 개선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빈손’이라는 오명을 받아 온 공수처 1기를 반면교사 삼기 위해서는 공수처를 떠난 전직 검사들의 목소리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17일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2기 공수처 수장이 되는 오 후보자는 특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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